“아키에이지의 소리는 대형 오케스트라가 연주 전 조율하면서 내는 음악 같다고 생각해요.”
가수 윤상(43)은 ‘21세기는 소리도 보이는 시대’라고 정의했다. 라디오 프로그램 녹음을 마친 그를 여의도에서 만났다.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국내 대표 싱어송라이터 윤상이 게임음악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는 작년부터 엑스엘게임즈에서 개발하는 대작 MMORPG ‘아키에이지’의 음악감독을 맡아 막바지 작업 중이다. 스스로 작사, 작곡, 가창을 비롯해 소녀시대, 아이유, 성시경 등 정상급 가수와 작업해 온 윤상 감독에게 게임음악은 음악 인생 20년 만에 경험하는 낯선 도전이다.
“영상물에 음악을 맞추는 작업은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었지만, 게임음악은 처음이라 제의를 받고 한동안 고민 했죠. 게임음악은 대중음악과 달리 따로 들어보며 즐길 기회도 적으니까요.”
담담하게 1년여 전을 회상하며 윤 감독은 게임음악에 대한 첫인상을 무엇보다 방대한 작업량으로 기억했다. 드넓은 세계와 다양한 종족, 많은 이용자가 모여 즐기는 온라인 게임이니만큼 블록버스터 영화를 상회하는 많은 스코어와 테마별 사운드가 필요했다. 아키에이지는 200명 이상의 개발진이 투입된, 국내서도 손꼽히는 대작 게임으로 제작 중이다. 그는 영화나 다큐멘터리 등 통상 영상음악 작업에서 요구하는 양에 두세 배의 작업을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대형 MMOPRG가 요구하는 ‘다양성’과 제가 가진 ‘색깔’이나 ‘스타일’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죠. 전자음악이 제 전문분야지만 첫 단추를 끼우기 전까지는 시행착오를 여러 번 거치고 개발팀과 상의를 많이 했어요.”
윤 감독은 자신이 만드는 음악이 기존의 게임음악과 너무 달라, 이용자들이 낯설어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을 염려했다. 최대한 게임에 몰입을 높여주고 배경음악으로 즐기는 역할이 중요한 만큼, 중용의 길을 선택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가 어느 정도 편집된 상황에서 감독의 편집의도에 따라 타임라인에 음악을 입히는 정도라면, 게임음악은 플레이 하면서 이용자의 상황에 따라 음악이 나오기 때문에 의도적 연출이 어렵죠.”
윤 감독은 자신의 장기인 전자음악을 살려, 어느 때보다 다양한 가상악기로 오케스트라 작업을 해냈다고 말했다. 가상악기란 신시사이저 같은 악기를 컴퓨터 프로그램화한 것으로 실제 악기처럼 다양한 연주가 가능하다. 최첨단 가상악기를 활용해 고전적인 분위기의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아키에이지를 표현했다. 그는 “나를 표현하려고 음악적 고집을 부리는 것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단, 국내에서 만들어진 어떤 게임음악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을 보여주겠다는 처음의 포부는 잊지 않았다.
윤 감독은 가장 나중에 만들어질 주제가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생각도 전했다. 평소 아프리카나 남미 등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의 음악을 앞장서 국내에 소개한 만큼 이국적인 색깔을 드러낼 주제가를 만들 계획이다.
“다양한 세계와 종족을 품은 게임이니만큼 한국어나 영어 같은 특정 지역의 언어보다 더 낯선 언어나 공통어를 쓰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작업들을 하나로 모을수 있도록 실제 오케스트라와 작업하는 것도 고려 중이죠.”
윤 감독은 아키에이지의 보이지 않는 가상세계에 자신의 음악이 상상력을 부여하는 매개체이길 기대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