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인터뷰

 안철수. 우리 시대 최고 ‘브랜드’ 중 한 명인 그가 지난달 9일 정식 임명장을 받고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취임했다. KAIST 종신교수를 뿌리치고 서울대로 옮긴 그는 “한국의 융합학문 수준이 미국·일본보다 낮으며, 자신의 경험이 한국 융합학문 발전에 쓰일 수 있다면 보람된 일”고 말했다. 지난 5일 수원 광교테크노밸리 내 그의 집무실에서 ‘융합대학원장 안철수’를 국내 언론사로서는 처음 만나 융합과 기업가정신 등에 대해 들어봤다. 정부로부터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아온 그는 인터뷰 말미 “행정가로 변신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철학이 맞는 대통령이 삼고초려 하면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행정가와 정치가로서의 변신 가능성에 대해서는 노(no)로 일관해 온 그가 처음으로 행정가로서의 변신 가능성을 내비친 순간이었다.

 

 -대학원장에 취임한지 한 달이다. 그동안 느낀 점과 소감은

 ▲지난달 9일에 임명장을 받았으니까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현황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광교테크노밸리 안에서 서울대가 쓰는 건물이 4개인데 이 중 1개만 대학원이 사용한다. 회사보다 규모가 작아 비교적 빨리 현황파악을 끝냈고, 일부는 이미 문제 해결에 들어갔다.

 -어떤 문제점들이 있나

 ▲일단 부지 확보가 문제다. 교수 숫자도 부족하다. 교육부에서 허가 받을 때 전임교수를 20명 둘 수 있었는데, 11명밖에 못 뽑았다. 9명이나 부족하다. MB정부 들어 공무원 충원이 동결되면서 그렇게 됐다. 서울대 교수는 신분이 공무원이어서 충원에 제약을 받는다. 내년 1월 서울대가 법인화되면 공무원 충원 동결에서 자유로워져 부족한 전임교수를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융합대학원 운영 방침은

 ▲현재 4개과(지능형융합시스템학과·나노융합학과·디지털정보융합학과·분자의학 및 바이오제약학과)가 있다. 그런데 이 4개 과로는 융합의 범위를 전부 다루지 못한다. 그래서 혁신적으로 과(科)를 전부 없애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대학을 생각하면 과를 떠올리는데, 사실 과는 벽을 만든다. 과를 없애는 대신 전공별로 자유롭게 합치거나 나누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대학원 이름도 바꾸려 한다. 현재의 이름은 너무 길고 과학기술에 집중해 있다. 이과(理科)만의 융합이라는 인상을 준다. 부르기 편하고, 범위도 넓은 융합대학원이 어떨까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내부의 동의를 얻어 추진할 거다.

 -임기 중 이것만은 꼭 이루겠다는 것이 있다면

 ▲과학기술에 인문과 경영을 접목하고 싶다. 미래 발전을 위한 틀도 만들고 싶다.

 -첫 졸업생이 배출됐는데 이들의 진로는 어떻게 되나

 ▲올해 14명의 석사 졸업생이 처음 나왔다. 14명 중 취업한 사람이 8명, 박사과정 진학이 4명, 취업 또는 고시준비생이 2명이다.

 -정부가 오는 10월 산업융합촉진법을 시행하는 등 융합산업 육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융합이 뭐라고 생각하나. 정의를 내린다면.

 ▲융합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다. 그런데 사람들이 스스로의 편의를 위해 분류를 했다. 이것이 굳어지면서 오히려 부작용이 많아졌다. 다시 자연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시도가 융합이라고 생각한다.

 -융합도 패러다임 시프트(인식전환)가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의 패러다임 시프트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이 플랫폼화다. 예전엔 휴대폰이면 휴대폰 하나의 단독 아이템이면 됐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휴대폰을 다른 사람한테 줄 수 있게 개방하면서 플랫폼이 중요해졌다. 페이스북을 보자. 단독 웹사이트였는데 다른 개발자들이 참여하면서 플랫폼화가 됐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플랫폼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키아도 결국 플랫폼화를 못해 무너졌다. 플랫폼화가 되면 생태계도 구축된다.

 둘째는 융합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바일 △소셜 △커머스 △클라우드 이들 네가지 IT흐름과 이들 간에 합쳐져 강력한 시너지가 난다는 것이다. 셋째는 옛날과 매우 다른 현상인데, 다른 회사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 인프라가 된다. 그루폰의 예를 보자. 그루폰이 5년전 나왔으면 망했다. 그루폰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때문에 성공했다. 다른 회사나 사람의 비즈니스가 내 비즈니스 발전의 기반이 된다. 참 신기한 현상이다.

 -정부가 융합을 촉진하기 위해 산업융합촉진법을 올 10월 시행하는 등 융합 확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의 융합 점수는 몇 점이라고 생각하나.

 ▲딱히 계량화하기 힘들다. 융합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너무 쪼개다 보니 부자연스러워졌다. 스탠퍼드 공대에 가보라. 공대가 다 연결돼 있다. 다른 과 교수들과도 자연스럽게 섞인다. 서울대는 그렇지 않다. 서울대 가보면 과마다 건물이 따로따로다. 같은 과 교수하고만 이야기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세계적 융합국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이유 때문에 융합연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 대학교수 해보니까, 교수는 직업 특성상 다른 사람과 안 친해도 된다.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직업이다. 이를 없애려면 무언가 동인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과 같이 하는 연구에 가점을 주고 더 인정해줘야 한다. 많이 동떨어진 분야일수록 가점을 더 줘야 한다. 초창기에는 중복과제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시도가 이뤄진다. 지금과 같은 과제 평가시스템에서는 혁신적 아이디어가 나올 확률이 제로다. SCI 논문은 많지만 인용은 없고, 돈은 많이 쓰지만 성과는 안 나오게 된다.

 -지난 2년간 전국 대학을 순회하며 청년들에게 기업가정신을 강의해왔다. 요지는 무엇인가

 ▲내가 젊은이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상황 탓 하지 말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는 법을 찾으라는 것이다. 둘째는 현재의 사회구조가 잘못돼 있는데, 여기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바꾸려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업가는 새로운 가치나 일자리를 스스로 만드는 가치창조의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일으킬 기(起)에 일 업(業)자를 사용하는 기업은 그 뜻풀이대로 커다란 위험에도 자기 스스로 행동해 새로운 가치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말한다. 실패를 사회적 자산으로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스티브 잡스보다 스티브 잡스를 있게 한 실리콘밸리가 더 대단하다. 그들은 한 번 실패해도 다시 기회를 준다. 잡스도 여러 번 실패했는데, 우리나라였다면 그걸로 끝났을 거다.

 -끝으로 국내 첫 백신 프로그램인 안철수연구소의 V3가 나온 지 올 6월로 만 23년이 됐다. 그러나 아직 글로벌 시장에서는 성과가 없는 것 같다

 ▲V3는 바이러스인 ‘브레인’을 치료하기 만들었다. 현재 자체 브랜드로 수출하는 거의 유일한 보안 소프트웨어다. 현대자동차 포니가 수출시장에서 자리 잡은 것은 근 30년이 지나서다. 우리도 해외 시장에서 성과를 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예전에는 안연구소의 매출 중 90% 이상이 V3 백신이었는데 지금은 절반 정도 밖에 안 된다. 대신 네트워크 장비와 어플라이언스, 관제 서비스 등 서비스 분야가 커지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 상태로 가면 올해 사상 최대의 실적이 예상된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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