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게 인생의 고비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이 같이 말했다. 잡스는 ‘죽음을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까지 언급했다. 췌장암으로 죽음에 가까이 갔던 경험이 오히려 자신 사업 성공의 핵심 요소가 됐다는 역설은 감동스럽다.
최근 두명의 벤처 CEO로부터 잡스의 연설을 연상시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CEO는 사흘 연속 코피를 터뜨렸고 마지막 날 시간이 흘러도 코피가 멎지 않아 결국 병원에 달려갔다. 의사 설명이 과로로 코 안쪽 혈관이 터졌는데, 만약 거기가 터지지 않았다면 뇌 쪽에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코 부분이 약한 게 천만 다행’이라며 크게 웃었다.
그에게 일상을 물었다. “창업 초창기(30대 중반)에만 해도 사흘연속 잠을 자지 않고 일한 적이 있다. 지금(40대 후반)은 3~4시간 잠을 잔다. 예전 같지 않아서 안타깝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숨을 내쉬었다. 조만간 20일 가량 중동·아프리카 3개국으로 출장을 떠난다는 것이다. 몸을 챙겨야 하니 다른 사람을 보낼 것을 권하자, ‘벤처에 다른 사람이 어디 있느냐. 내가 안 가면 일이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누구도 그의 출장을 막지 못한다. CEO는 자금과 인력 부족을 몸으로 ‘때우고’ 있다.
해외 2곳에 지사를 둔 40대 후반의 한 벤처 CEO는 “지난 10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셀 수 없이 많이 한강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했다”면서 “누군가 창업을 한다면 목숨까지 내놓고 할 준비가 됐느냐고 묻겠다”는 말을 던졌다. 결연했다.
무늬만 벤처 CEO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적당히 남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벤치마킹해 이곳저곳 정부 지원 프로젝트로 연명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많은 벤처 CEO 대부분은 가족과 건강을 내팽개치고 현장에서 산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를 꿈꾼다. 나만의 기술과 아이디어로 세계를 호령해보겠다면서 오늘도 사력을 다해 기술 개발과 영업·마케팅에 매진한다. 진정한 우리나라 대표 벤처 CEO들이다. 그들 모두에게 힘차게 박수를 보낸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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