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이공계 위기의 단순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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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공계 위기가 거론되기 시작한지도 벌써 10년 이상이 지났다. 서울대학교에서조차 이공계 입학생들이 의대, 치의대, 약대로 진로를 바꾸는 사례가 적지 않다. 서울대 공대에서 지난 10년간 자퇴 등으로 중도탈락한 학생이 1100명을 넘어 제적생의 30%에 이른다고 한다.

 한 지인은 대학에 진학하는 자녀가 ‘똑같이 노력한다고 가정할 때, 어떤 직업이 가장 수입이 좋고 안정적이냐’고 물어왔다고 한다. 그 자녀는 결국 법대에 진학했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이공계는 수입도 적고 안정성도 떨어져 이미 매력을 잃은 지 오래다.

 과거에는 우수한 인력이 이공계 대학에 진학해 우리나라 산업과 경제를 세계 10위권까지 끌어 올렸다. 이공계 대학 교수들은 최근 10여년간 조금씩 하락하고 있는 신입생의 수준을 보면서, 우리 산업이 맹렬히 추격해오는 중국의 도전을 과연 막을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 잘 알려진 역사적인 사례를 인용해 타산지석으로 삼기로 하자.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에서, 1900년을 전후해 우수한 과학기술자들이 대거 동인도 회사에 취업했다. 보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공계 인력의 이러한 이탈은 20년 후 영국이 후발국 독일에 밀려나 유럽의 주도권을 내주는 대역전극의 시발점이 됐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세계 제1의 경제대국으로 군림했던 미국에서, 1980년대에는 우수한 과학자들이 이공계 현장을 떠나 처우가 훨씬 좋은 월스트리트로 옮겨 금융업에 종사했다. 이때부터 미국 경제는 제조업이 쇠퇴하기 시작해 점차 일본, 유럽, 한국에게 시장을 내주게 됐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을 들어보면 연예인, 운동선수, 의사, 변호사, 교사, 공무원 등이 압도적이고 과학기술 분야의 직업을 꿈꾸는 청소년은 드물다. 희망 직종의 공통점은 소위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이공계 위기를 극복할 해법이 나온다. 이공계에서도 기술개발에 성공했을 때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핵심 원천 기술의 개발이 어려운 점은 예능분야, 스포츠 분야, 의사고시, 사법고시 등의 타 분야와 다를바 없다.

 우리나라 기술수지는 OECD 가입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핵심 원천기술의 개발로 기업에 로열티 수입이 발생하거나 크로스라이선싱에 기여하거나 제품 경쟁력 제고에 기여했을 때 기술개발자에게 충분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국가기관은 이미 로열티 수입의 50%를 해당 기술의 발명자에게 보상액으로 주도록 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기술개발에 의한 기업 이익 정보는 개발자에게 공개하지도 않고 실질적인 보상도 하지 않는다. 기술개발자들이 기업을 상대로 보상 청구소송을 하는 것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같다. 기술개발자가 직무발명 보상 목적의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기술개발의 성과를 기업이 모두 차지하고 발명자에게 보상하지 않는다면 결국 기술자들의 개발 의욕은 사라지고 만다. 또한 이공계 직업에서 희망을 볼 수 없게 돼 청소년들이 기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공계 지망생들에게도 타분야와 마찬가지로 성공에 대한 롤모델이 있어야 한다. 이공계에도 김연아나 박지성이나 배용준 같은 스타가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기술개발이 성공했을 때 이에 상응하는 높은 보상이 주어진다면 기업의 이공계 인력들은 밤새워 기술개발에 몰두할 것이다. 기업과 기술개발자가 윈윈하는 길이다.

 이렇게 되면 우수한 청소년들이 연계계나 스포츠, 그리고 의사, 변호사 등에 몰리지 않고 이공계에도 많이 진출할 것이다. 이공계 위기를 극복할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추상적인 복잡한 논리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타분야와 마찬가지로 힘들게 노력해 기술개발에 성공했을 때 이에 상응하는 부와 명예가 따르는 것, 바로 이것이다. 사명감만으로 인재를 이공계에 끌어들일 수는 없다. 보상 없이 사명감만으로 김연아나 박지성이나 배용준이 나올 수 없는 것과 같다.

 정제창 한양대학교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jjeong@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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