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 한파가 불어닥칠 때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증시가 휘청일 때도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주식이었다. 몇 차례나 주식으로 벼랑 끝에 서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그의 관심은 주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웬만한 큰 손이라면 한 두채 가지고 있을 법한 빌딩도 그에게는 없다.
산전수전을 겪으며 30여년 동안 주식만을 연구해 왔다는 재야 고수 조문원 로데오투자클럽 대표(55·사진). 그는 현재의 장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 "자동차 부품株, 재평가될 때 됐다"
"당분간 조정은 불가피하겠지만 우려할 만한 급락장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또다시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낮죠."
조 대표는 수출기업들의 선전으로 무역수지가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데다 풍부한 유동성이 증시를 떠받치고 있어 큰 폭의 하락은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도 빠른 경제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국내 증시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은 낮게 내다봤다.
그는 "미국에서 유동성 위기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한 외국인들이 국내 시장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국내 증시는 여전히 저펑가돼 있어 유럽 재정위기 사태가 마무리되고 글로벌 시장이 안정되면 다시 상승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현재의 환율이 유지된다고 볼 때 올해 하반기까지 코스피가 2500까지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조 대표는 그러나 증시가 빠르게 올라온 만큼 당분간 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증시 강세장 속에서도 소외됐던 중소형 종목들에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풍부한 자산과 양호한 수익성을 갖추고도 시장 수급에 의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중소형 종목에 투자하라는 게 조 대표의 말이다.
그는 종목 선정 시 주가순이익비율(PER)보다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더 눈여겨 본다. 자산에서 부채를 뺀 자본총계에 비해 시가총액이 낮을수록 주목한다.
조 대표는 추천 종목으로 비상교육, 동일방직, 아세아제지, 동국실업, 진양홀딩스 등을 제시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눈여겨 볼 만한 종목들이다.
그는 "3년 전 상장한 비상교육의 경우 지속적으로 투자에 나서면서 실적이 악화되고 주가도 공모가의 반토막 이하로 내려앉은 상황"이라며 "앞으로 투자에 따른 수익성이 가시화되면 주가도 반등하면서 현재의 2배 이상 올라갈 수 있는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조 대표는 만년 저평가돼 있는 자동차 부품주에 대해서도 관심을 드러냈다. 그는 "자동차 부품업체 중에는 토지와 건물, 기계장치 등 풍부한 자산을 갖추고도 제대로 수익이 나지 않아 소외된 종목이 많다"며 "국내 자동차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어 부품업체 주가도 다시 상승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동국실업을 비롯해 덕양산업, 한국프랜지 등이 그의 추천 종목이다.
그는 골판지 원지를 생산하는 아세아제지, 슈퍼개미의 지분 처분 후 약세를 이어가고 있는 현대약품, 진양그룹 지주사이자 알짜 자회사를 두고 있는 진양홀딩스 등도 저평가된 중소형주로 제시했다.
◇ 한때 죽음의 문턱까지…재기로 200만원→70억원
조 대표는 주로 대형주보다는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중소형주를 발굴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가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대형주와 달리 중소형주 중에는 실적 등과 무관하게 수급에 의해 낮게 평가된 종목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 그는 볼품없어 보이던 종근당을 발굴해 30배의 차익을 거둬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1000원대에 불과했던 화신은 최근 2만원 선까지 치솟았다. 800원 선에서 매수했던 유니온은 1만5000원 선까지 넘나들고 있다. 대부분 공장 등 보유 자산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시가총액이 현저히 낮았던 종목들이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중소형 가치주에 투자했던 것은 아니다. 주식투자 초반 15년 동안은 테마주 위주로 단기 투자에 나서거나 상따(상한가 따라잡기), 레버리지를 이용한 매매 등으로 투기에 나섰다. 한때 잘 나가는 듯 보였던 종목들이 1992년 증시 급락과 함께 줄줄이 꼬꾸라졌다.
이중 대미실업은 그에게 절대 잊지 못할 뼈아픈 종목으로 남아 있다. 그는 대미실업이 상한가로 치솟자 서둘러 팔려고 했으나 마침 울산에 내려가 있어 거래소까지 올라올 수 없었다. 얼마 안가 대미실업은 부도를 맞았다. 그가 투자한 종목 중 4~5개 종목이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무너졌다. 늘어나는 대출이자와 함께 회사까지 그만둬야 하는 벼랑끝 상황까지 몰리자 조 대표는 잠시 죽음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마음을 추려잡고 재기에 나섰다.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슈퍼마켓을 차려 하나둘 빚을 갚아 나갔다. 이런 가운데 그는 다시 주식시장에 발을 내딛었다. 물론 과거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투기가 아닌, 저평가된 우량 종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투자의 첫 시작은 대우증권에서였다. `큰 수익은 안나더라도 절대 손해는 보지 말자`고 다짐한 그의 눈에 에이즈치료제를 개발하는 삼진제약 실권주가 들어왔다. 그는 이 주식이 안전하면서도 자산에 비해 저평가됐다고 판단하고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사들였다. 1년 후 주가는 2배로 치솟았다.
조 대표는 자동차 부품업체 화승알앤에이도 8000원대에서 매수해 2만7000원에서 매도했다. LCD 부품업체 새로닉스의 경우 알짜 자회사인 엘앤에프에 주목해 투자했다가 매수 이후 상한가 행진을 이어가면서 이례적으로 한달 만에 팔았다. 한국프랜지는 1만2000원에서 2만원대까지 치솟았으나 그는 여전히 저평가됐다며 추가 매수에 나서고 있다.
이외에도 그는 한일이화, 삼현철강, 화신 등을 발굴해 종잣돈 200만원을 10년 만에 70억원 이상으로 부풀렸다. 원칙을 정해놓고 투자한 최근 10년간은 투자에 실패한 종목이 거의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 "급락장서 공포감 깊어질 때 매수해야"
글로벌 금융위기로 증시가 500포인트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공포감이 팽배해 있던 당시 조 대표는 오히려 주식을 매수해야 한다며 8개 종목을 추천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가 추천한 종목들은 불과 7~8개월 후 80% 가량 올랐다.
조 대표는 "투자자들은 증시가 한창 거품일 때 들어갔다가 장이 나빠지면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며 "해당 종목 주가가 낮을 때는 별로 관심을 안보이다가 다시 주가가 움직여 올라가면 늦게서야 투자하는 게 개인들의 투자실패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남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비정상적으로 싼` 중소형주를 발굴하는 데 주로 시간을 보낸다. 한번 매수한 종목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5~6년 보유한다. 100% 이상 수익이 나지 않으면 절대 팔지 않는다. 현재 10개 내외의 소수 종목만 보유하고 있다.
조 대표는 "때로는 저평가됐다고 판단해 매수했다가 오히려 주가가 더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며 "이럴 때는 더 낮은 가격에 추가 매수하고 나면 결국은 주가가 오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증권사들의 스카웃 제의에도 불구하고 증권사행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실적 위주의 증권사에 발을 담그게 되면 그 동안 고집해 왔던 원칙들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본인의 운용철학을 반영한 자문사를 차려보고 싶은 욕심은 갖고 있다.
조 대표는 "앞으로 투자자문사 설립 기준이 완화되면 독자적으로 자문사를 설립해보고 싶다"며 "수익이 나는 경우에만 수수료를 받아 좋은 일에 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정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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