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BMW택시 달리고 동대문엔 유럽 감성패션 넘실

#서울 동대문 신평화패션센터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이 모씨(31ㆍ여). 세계 패션을 주도하는 유럽의 디자인 흐름을 읽기 위해 백화점 명품 매장을 자주 찾는다는 이씨는 7월 한ㆍEU FTA 발효가 동대문 상가에 `디자인 빅뱅`을 가져올 것으로 믿고 있다. 한ㆍEU FTA가 발효되면 유럽 명품 브랜드의 직진출은 물론, 극소수의 명품 마니아들에게만 알려진 현지 희귀 명품 브랜드도 한국 시장에 선보일 가능성이 커진다는 설명이다. 이씨는 "동대문 상가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이 최신 유럽 디자인을 보다 쉽게 만나는 기회가 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시장인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가 다음달 1일로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경제 분야를 넘어서 한국 사회 전반에 `빅뱅`이 예고되고 있다.

관세 철폐에 따른 교역량 증가 등 경제적 효과와는 별개로 한ㆍEU FTA는 유럽식 디자인, 가치관, 소비패턴 등 보이지 않는 사회ㆍ문화적 다양성이 한국 사회로 유입될 전망이다.

당장 자동차 구매 때 크기와 배기량과 제조 브랜드를 따지는 한국 소비자 특유의 `외형 중시형` 소비 패턴은 `실용ㆍ에너지 효율`을 중시하는 유럽식 소비 패턴으로 형질 변환을 할 전망이다.

경제영토가 넓어지면서 유럽에 대한 한국민의 심리적 거리감도 줄어들게 됐다. 우리 기업들이 단지 수출입 확대라는 경제적 틀에서 벗어나 한ㆍEU FTA가 가져올 사회ㆍ문화적 파급효과에 주목하고 대비해야 할 이유다

◆ 수입차 관세 3년뒤 사라져

= "삼성 SM520을 7년 탔는데 이제 슬슬 외제차로 바꾸고 싶어요. 가격이 계속 오르는 현대ㆍ기아차나 신형 SM5를 사느니 차라리 외제차로 갈아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지난 7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개인택시 운전사 김 모씨(67)는 요즘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SM520 택시로 30만㎞를 달리는 동안 아무런 잔고장이 없어서 좋았지만 슬슬 차를 바꾸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

실제 작년 말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소속 한 조합원은 차량가액만 1억원이 넘는 BMW 735시리즈로 모범택시를 운행하려고 했다.

안타깝게도 이 모델이 LPG 구조변경이 불가능한 터보엔진 방식이라 실제 구매가 이뤄지진 않았지만 이미 일부 개인택시 운전자들이 벤츠ㆍBMW 차량을 후속 택시로 고려하고 있다. 구매 후 10년 동안 소모성 부품을 무상 교환해주는 수입차 서비스가 이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한ㆍEU FTA가 발효되면 1500㏄ 이상 수입차에 붙는 관세는 8%에서 단계적으로 줄어 2014년 7월 모두 철폐된다. 오는 2015년께부터 서울역 광장이나 인천국제공항에서도 BMWㆍ벤츠 택시가 즐비하게 늘어선 유럽 공항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 친환경ㆍ안전 놓치면 시장 잃는다

= 수입차 선호 현상은 비단 택시뿐만이 아니다. 유럽산 공산품과 식료품이 대거 수입되면서 한국 소비자의 구매 기준도 유럽식의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자동차 배기량ㆍ브랜드를 사회적 지위와 동일시하는 한국적 소비 특성은 친환경 기술과 고연비로 무장한 유럽 자동차의 도전을 받게 됐다.

식품 안전성 부분은 소비자 눈높이가 크게 높아져 위생ㆍ안전에 물의를 일으킨 기업은 시장에서 회복 불가능한 신뢰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단적으로 유럽산 돼지고기의 경우 한국의 도축시스템보다 훨씬 엄격한 위생 관리 수준을 자랑한다. 정부와 업계가 국내 도축시스템 전반을 업그레이드하는 노력 없이 신토불이 논리만 주장하다가는 국내 소비자로부터 된서리를 맞을 수 있다.

가격이 비싸 소비자로부터 외면 받은 각종 친환경 상품들에도 뜻밖의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제조비용이 커 시장성이 떨어지는 친환경 상품의 경우 향후 코스트(비용)가 따르더라도 그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정착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동물복지 등 관습ㆍ제도 변화

= 한ㆍEU FTA는 이미 한국의 제도와 관습을 바꾸고 있다. 그간 한국 사회가 소홀했던 동물복지 등에서 유럽식 기준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 정부는 한ㆍEU FTA 발효에 발맞춰 EU와 동물복지에 대한 정보, 전문지식 및 경험을 교환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무 작업을 추진 중이다.

비록 도축이라는 운명을 타고 났지만 자라나는 동안 자연 방사 등 최적의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EU의 동물복지 정책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유럽에서 일고 있는 K-POP 열풍은 한국ㆍ유럽 엔터테인먼트 산업 간 빅뱅을 예고한다.

고주현 연세대ㆍSERI EU센터 연구교수는 "한ㆍEU FTA 문화협력 의정서에 따르면 기획자, 연출가, 안무가 등의 상호협력 제작이 가능해 한국의 문화산업이 EU로부터 공동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며 "K-POP 열풍은 이 같은 공동투자 규정을 현실화하는 유인 장치로 작동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매일경제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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