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종종 듣는 IT융합이 무엇이냐고 반문하면 바로 명확한 답을 줄 사람이 몇 있을까? 그럼에도 각자 자기 입장에서 나름대로 해석한 IT융합의 깃발 아래 중구난방으로 IT투자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우선, 필자가 생각하는 IT융합을 크게 3가지로 분류해 보자. 첫째는 기존 산업의 업무흐름을 크게 바꾸지 않고 요소요소를 IT화함으로써 이뤄 내는 것으로 전통적인 종래의 전산화 작업이나 다를 바 없는 융합(전통 IT융합이라 부르기로 함)이다. 둘째는 기존의 업무는 그대로이지만, IT전문가의 직접적인 업무 재해석과 분석을 거쳐 나온 IT화 전략에 의해 구축되는 융합(선도 IT융합)이다. 전자정부 업무가 이러한 부류에 속할 것이다. 셋째는 첨단 IT기술 전문가와 기존 산업전문가, 그리고 인간과의 조화 문제를 잘 이해하는 인문계 전문가가 숙의하여 독창적인 산업을 창출해 내는 융합(창의 IT융합)이다.
IT강국으로 평가 받는 우리 IT를 충분히 산업에 적용, 효율의 극대화를 이루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로 진출하여 국익과 국격을 높여 가려면, 위의 세 가지 중 선도적이거나 창의적 융합을 적극 개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진 사업들이 현재와 같이 각 부처 이기주의에 의해 배당된 예산을 자신이 집행해야 한다는 사명감(욕심) 때문에 초보적인 전통 IT융합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종종 정부의 IT관련 예산은 전체적으로 늘었다고하나, 투자의 상당 부분이 이와 같은 전통 IT융합에 분산되고 있어서 정작 앞으로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이 될 창의 IT융합 시스템/서비스 개발에는 투자가 소홀하다.
창의적인 IT융합 모델을 성공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IT전문가와 각 부처 산하 각 산업 전문가, 그리고 사회학, 심리학, 경제학, 디자인 등 인문계 전문가들이 참여한 브레인풀을 구성, 운영할 필요가 있다. 융합할 업무의 흐름에 IT를 접목시켜 어떻게 바뀌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종래의 방식이 아니라, 근본부터 융합할 업무와 관련된 전문가와 서비스 받을 이용자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줄 인문계 전문가들이 모여 분야 간 벽을 허물고 통섭적인 토론과 연구 탐색을 거쳐 지금까지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시스템)를 창출해내게 한다.
창의 IT융합 서비스로 ‘i-car’를 예로 들어 보자. 현재의 자동차는 과거로부터 진화한 결과이어서, 자동차 전문가는 진화과정에서 나온 기능의 일부분을 IT화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나 기존 개념의 틀에 묶이지 않은 IT전문가가 IT기술의 가능성을 전제로 자동차 기능을 분석하면, 현재의 자동차의 한계를 뛰어 넘는 혁신적인 새 개념의 자동차를 설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자동차는 다수의 기계부품으로 구성된 작은 기능모듈로 나뉘고, 각 모듈은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모듈들의 제어는 소프트웨어에 의해 구동되는 개념설계가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동차의 기능, 성능은 소프트웨어의 변경에 따라 그 특성이 다양하게 변화되는 소프트웨어 프로덕트로 바뀌게 될 것이다. 유사한 방법으로 자동차만이 아니라 선박, 식물공장, 건설, 토목, 교통, 환경 등 모든 산업분야에 이러한 혁신적인 서비스(시스템) 개념을 창출해 낼 수 있다.
정부 정책입안자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단기적인 전통 IT융합만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창의 IT융합 개발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아, 머지않아 외국에도 없는 우리 고유의 IT융합서비스가 한국만이 아니라 외국에도 전수되는 그야말로 진정한 IT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면 지나친 것일까?
강철희 고려대 교수 chkang@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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