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금융권에 휘몰아칠 것으로 보였던 인수합병(M&A) 태풍이 구심점을 잃고 잦아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전산 사고 사태 등 금융권 내부 문제뿐 아니라 정치 환경 등 외부 변수마저 금융회사간 짝짓기에 불리한 풍토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 우리, 신한, 하나 등 금융지주사들은 최근 최고경영자(CEO) 인선 작업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영업경쟁에 뛰어들 채비를 갖췄다.
또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에 나서면서 금융지주사들 사이에 "다른 은행을 먹어 덩치를 키우지 않으면 도태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돌기 시작했다.
특히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이 지난달 취임하면서 산업은행의 민영화와 메가뱅크(초대형은행)가 금융권의 핵심이슈로 재부상했다.
우리금융과 산은금융의 합병,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정책금융기관들의 통폐합 등 온갖 소문이 다시 나돌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강 회장을 임명제청한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산은금융의 최대현안에 대해 "민영화와 구조개혁이다"라며 "믿고 통으로 맡길 사람이 필요했다"고 밝혀 산업은행 민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한 금융권 고위관계자도 "강만수 위원장은 금융 빅뱅이 생기게 하는 크랙(균열)이다"라며 "크랙이 모든 것을 다한다는 게 아니라 크랙이 생기면 그로 말미암아 모든 것에 예상할 수 없는 변화가 생길 것이다"라며 메가뱅크 탄생 가능성을 언급했다.
현행 산업은행법에 따르면 기업공개(IPO) 등 민영화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마친 뒤 2014년 5월까지는 산업은행의 최초 지분 매각이 이뤄져야 하며,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우리금융 민영화와 관련한 로드맵을 2분기 중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금융권 안팎의 환경은 메가뱅크라는 씨앗이 싹트기에는 척박한 환경으로 변모하고 있다.
우선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가 지지부진하면서 무작정 몸집 키우기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회의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과당경쟁에 따른 카드 위기 논란으로 금융지주사들의 외형경쟁에도 제동이 걸린 형국이다.
저축은행 사태를 비롯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현대캐피탈과 농협의 전산보안 문제 등은 금융당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민영화와 메가뱅크라는 큰 숙제를 챙길만한 여력이 없어진 것이다.
지주사 회장들도 최근 금융당국의 부탁을 받고 부동산 PF 등 `급한 불 끄기`에 투입돼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사라졌다.
인수합병의 핵으로 부상했던 강만수 회장은 취임 후에는 금융당국 수장을 맡고 있는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민영화나 메가뱅크와 관련해서는 내부적으로도 언급을 자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은행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업무보고에서 "지분매각은 체질개선 성과, 국내 금융산업 발전, 국내외 시장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탄력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라며 모호한 태도를 나타내기도 했다.
김석동 위원장도 최근엔 "메가뱅크라는 말을 누가 지어냈느냐.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금융산업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재편하느냐가 관건이다"라며 메가뱅크 기대를 잠재우는 듯한 발언을 했다.
게다가 민영화를 포함한 국내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은 `4.27 재보선` 이후 단행될 것으로 보이는 개각 과정에서 물러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또 대통령의 임기가 약 2년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레임덕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일각에서 나오면서 메가뱅크와 같은 큰 그림을 그리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008년부터 추진돼온 산업은행의 민영화가 여태 지지부진한 것에서 보듯 차기 정권에서나 M&A 또는 메가뱅크의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인수합병 대상으로 거론되는 한 금융기관의 고위 관계자는 "내년에는 총선까지 있어 M&A에 나서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메가뱅크 같은 금융기관 간 거대한 짝짓기는 금융산업이 발달한 미국에서조차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우리금융과 산은지주의 민영화 모멘텀은 현 정권에서는 사라졌다"고 단언했다.
그는 "(무리하게 메가뱅크를 추진한다고 해도) 현 금융지주 회장들의 CEO 리더십의 부재 등으로 추진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고 합병됐다 하더라도 부실은행으로 전락할 것이다"라며 "2년 뒤 정권이 바뀌면 특혜 시비로 청문회에 서야 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반면 KB, 우리, 하나 등 금융지주 회장들이 모두 이명박 대통령과 대학 동문이고, 강 회장도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점에서 어느 순간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우리금융 고위 관계자는 "(관련법에 따르면) 두 차례 경쟁입찰이 무산되면 앞으로는 공개경쟁입찰을 하지 않아도 되고 원하는 대로 매각 방식을 만들어 할 수 있게 돼 있다. 따라서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민영화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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