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최원병 농협 회장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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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주의의 낡은 관행을 청산하고 능력과 업적을 중시하는 성과주의 문화를 반드시 정착시켜야 합니다. 일선 현장에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사업 추진과 업적 거양에 매진하는 직원에 대한 사기진작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습니다.”

 지난 2007년 12월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의 취임사 중 일부다. 21대 회장으로 당선된 그는 ‘틀을 깨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농협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직원들에 대한 보상도 약속했다. 2008년에는 김석동 현 금융위원장을 농협경제연구소장에 선임하는 등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농협법 개정을 위한 노력이 결실을 보기도 했다.

 이렇듯 거칠 것 없던 최 회장의 행보였다. 하지만,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 앞에서 그는 실망을 안겨줬다. 지난 14일 브리핑에서 최 회장은 “(사태에 대해) 바로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책임은 일선 직원 탓으로 돌렸다. 상황을 설명하는 직원에게 그 자리에서 호통치는 비상식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음날까지 복구를 마치겠다던 약속은 22일까지 세 차례나 번복됐다.

 이뿐 아니다. 이재관 전무는 22일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며 회장을 두둔했다. “회장은 비상임에 비상근으로 인사권, 보안 등에 직접적인 권한이 없다. 2008년 법 개정 이후 권한이 사라졌다”는 게 이 전무의 해명이었다. 회장은 아예 기자들 앞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IT·보안 인력은 금융권에서 가장 음지에 있다. 24시간 계속되는 해킹과 금융사고의 위협을 무릅쓰고 일하는 게 바로 이들이다. ‘잘해봤자 본전’인 셈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사고의 원인을 두고 ‘인사 피해’·‘부족한 처우’ 등 농협 내부 문제가 곪아 터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만약 최 회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약속처럼 IT·보안 인력의 사기진작 방안이 마련됐다면, 제대로 보상이 이뤄졌다면 열흘이 넘는 전산망 마비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농협의 대책에 ‘사람’은 빠져 있다.

 지금이라도 회장이 직접적인 책임을 지고 ‘사람’에 대한 지원을 약속해야 한다. 호통은 쳐도 책임은 없다는 모습으로는 땅에 떨어진 신뢰도, 멀어진 고객들의 마음도 돌릴 수 없다.

 정책담당

박창규기자 k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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