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42>

 사업자 선정 의혹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리는 법이다.

 정보통신부가 신규통신사업자 선정결과를 발표한 다음날인 1996년 6월 11일.

 신규통신사업자 선정결과에 야 3당이 일제히 정경유착 의혹(疑惑)을 제기하고 나섰다.

 야 3당을 중심으로 이른바 ‘정치권발(發)’ 신규통신사업자 선정 의혹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야 3당은 “선정과정에 의혹이 있다”며 이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야 3당은 △사업자 심사 점수를 공개하지 않은 점 △이석채 장관 취임 후 추첨제를 채점방식으로 바꾼 점 △정부가 경제력 집중을 완화한다면서 중소기업 컨소시엄을 탈락시킨 점 △정부가 심사항목에 도덕성을 포함시켰으면서도 뇌물사건과 관련이 있는 한솔PCS가 사업권을 획득한 점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민주당 야 3당은 11일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PCS사업자 선정 결과에 대한 논평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들어보자.

 정동영 국민회의 대변인(15·16대 국회의원, 통일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역임, 현 18대 국회의원, 민주당 최고위원)은 논평에서 “사전내정설이 나돌던 특정업체를 그대로 선정한 것은 정부가 이미 결정해 놓고 나머지 업체를 들러리로 세웠다는 의혹을 짙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 대변인은 “PCS사업자 선정의혹은 노태우 정권 때의 이동통신업체 선정파동과 궤를 같이 하는 김영삼 정권 최대 의혹사건으로 현 정권이 끝난 이후에 반드시 의혹이 규명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이 말은 정권교체 이후 정통부에게 악몽 같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김창영 자민련 부대변인(국무총리 공보실장 역임)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는 통신 신규사업자를 국회가 열리지 않는 틈을 타 비공개 심사를 통해 부랴부랴 선정한 것은 정경유착 의혹이 짙다”고 비난했다.

 김홍신 민주당 대변인(15·16대 국회의원 역임, 현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은 “심사가 졸속하고 특정 재벌 봐주기로 사업자가 결정되었다는 의혹이 있다”며 “정부는 사업자 선정과정과 절차를 즉각 공개하여 국민적 의혹에 대해 해명하라”고 주장했다.

 탈락업체 중에서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정부에 가장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중앙회는 11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한솔 등 PCS 장비비제조군 3개 컨소시엄이 제출한 사업계획서 일체와 사업권 심사기준, 가중치 관련 서류 등 정통부의 사업권 심사와 관련된 서류 일체에 대해 증거보전가처분신청을 내기로 했다.

 중앙회는 중소기업 정책기조에 역행하고 중소기업 전체를 모독하는 발언을 한 이석채 장관의 사임을 강력히 요구했다.

 중앙회는 “정통부가 중기컨소시엄을 와해시키기 위해 한국통신 자회사와 PCS사업자로 선정된 기업의 주식소유비율을 변경해 탈락한 중소기업을 참여시키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모든 행정적, 법적 대응조치를 취하겠다”고 결의했다.

 중앙회는 “심사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심사기준과 가중치 심사에 대한 상세한 결과는 물론이고 가중치를 언제 결정했으며 그 후 수정사항이 있었는지 여부를 정통부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회의는 12일에도 논평을 발표했다. 정동영 대변인은 “정부는 이석채 정통부 장관이 국민 앞에 사과하도록 하고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문과 방송 등은 정통부의 신규통신사업자 선정발표 결과를 크게 보도했다.

 신문은 11일 검은 글씨 컷으로 ‘PCS사업자 LG, 한솔선정’ ‘PCS사업자 선정, LG텔레콤, 한솔PCS’ 등의 제목을 달았다. 신문들은 별도 지면에 그간의 과정과 앞으로 통신시장의 변화 등을 소상하게 보도했다. 이날 신문들은 온통 신규통신사업자 기사로 도배를 하다시피 했다.

 정통부 공보관실은 신문과 방송의 논조를 예의주시했다. 여론의 반응은 통신대전의 대미(大尾)라고 할 수 있었다.

 이날 신문 가운데 유독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같은 사안인데도 논조(論調)가 극명하게 대비됐다.

 조선일보는 이번 사업자 선정에 의미를 부여했다. ‘통신업계 독점서 경쟁시대로’라며 ‘사업능력 평가서 우열 판가름’이란 제목을 돋보이게 편집했다.

 중앙일보는 3면 전면을 신규통신사업 특집으로 꾸몄다. 하지만 중앙일보는 ‘심사기준 오락가락 신뢰성 흠집’ ‘내정설·안배설 꼬리문 의혹’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회사의 주장을 반영하는 사설의 표제와 내용도 비교될 만큼 판이했다.

 조선일보는 ‘정보통신의 경쟁시대’라는 사설 제목을 달았다. 중앙일보는 ‘소문대로 된 통신사업자 선정’이라는 사설 제목을 붙였다.

 사설 내용도 달랐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신규사업자 선정이 정보사회의 지평을 열어갈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새 통신사업자 확정은 국내 통신사상 중요한 획을 긋는 전기가 될 것이다. 27개 신규통사업자의 최종 선정은 그 과정의 공공성이나 결과의 합리성과는 별개로 국내 통신산업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하나 더 세우는 것이었다. 국내 통신산업은 오랜 기간의 독점적 공영화에도 불구하고 쉴 새 없는 연구개발 투자를 포함한 대형설비 투자를 지속함으로써 비교적 짧은 시일 안에 통신 분야의 기반을 든든히 다져놓았다. 그러나 오늘의 급변하는 정보혁명의 시대에는 이 같은 기간통신 중심만으로는 역부족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보통신사업으로의 개혁과 변신을 저해하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다행히 정보통신시대의 새로운 전개를 너무 늦지 않게 간파한 정부와 통신업계가 이제 본격적인 정보화사회의 건설에 앞장서고 있어 이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에 비해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선정방법과 기준 등에 문제가 있다”며 “선정 의미도 엄밀하게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이 왜 정부가 사업자 선정에 직접 개입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이번 선정방법은 정부가 아무리 그럴듯한 기준을 제시해도 당초부터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몇 가지 지표에 객관적인 점수를 매기는 것 자체가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주관성이 개입되는 기준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기준이 몇 차례 바뀌고 처음부터 특정업체로 내정해 놓고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소문이 무성했다. 특히 장비제조업체부문인 LG텔레콤은 데이콤에 대한 경영지배 구조의 의혹이 없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신청됐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말썽의 소지를 안고 있다. 이 부문은 정부가 주장하는 경제력 집중이나 기업의 도덕성 같은 기준이 얼마나 내용 없는 개념인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야 3당과 언론의 신규통신 사업자 선정과정에 대한 의혹 제기는 정통부를 향해 비리(非理)의 그물을 던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사업자 선정작업 실무진은 언론 반응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실무자인 이규태 과장(정통부 감사관, 서울체신청장 역임, 현 한국IT비즈니스진흥협회 부회장)의 말.

 “언론의 이런 논조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장차관 등 윗분들이야 언론반응에 주목했겠지요. 하지만 실무자들은 심시기준에 따라 작업을 해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후속작업을 하느라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정통부 고위관계자 A씨의 말.

 “정말 아이러니했어요. 1995년 12월 조선일보 사설로 인해 정통부가 큰 곤욕을 치렀습니다. 장관이 경질되는 원인을 조선일보 사설이 제공했고 이를 본 김영삼 대통령이 ‘통신사업자를 또뽑기로 결정한다는 게 말이 되는 기가’라며 대로했어요. 당시 중앙일보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통부가 1995년 12월 15일 신규통신사업자 허가신청요령을 발표하자 조선일보는 12월 18일 사설을 통해 추첨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사설 제목도 ‘통신사업자 또뽑기’로 자극적이었다.

 월요일 아침 상큼한 기분으로 출근한 한이헌 경제수석(15대 국회의원, 기술신용보금기금 이사장 역임, 현 한국디지털미디어고교장)은 김 대통령의 호출을 받고 불려가 야단을 맞았다.

 그 여파로 경상현 정통부 장관이 12월 20일 단행한 개각에서 경질됐다.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고심 끝에 결정한 1차 서류심사, 2차 출연금비교, 3차 추첨방식은 이석채 장관 취임 후 채점제로 바뀌었다.

 한 경제수석의 증언.

 “경제수석을 거치지 않고 결정된 경제문제에 관해 김 대통령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할 사람은 당시 현철씨밖에 없었어요.”

 조선일보는 사설로 문제를 제기해 정부의 추첨제를 채점제로 변경시켰다. 사업자 선정이 끝나자 이번에는 중앙일보가 채점제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두 신문이 취한 정반대의 사설 논조에 대한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역임)의 분석.

 “사설의 배경에는 신문사의 사익(私益)이 가로놓여 있다. 신문사의 기업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을 때 사설은 심각하게 왜곡된다. LG텔레콤에는 조선일보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했다. 에버넷은 삼성과 현대의 컨소시엄이다. 삼성은 중앙일보를 지배하고 있었다. 중앙일보가 에버넷 탈락에 분통을 터뜨리고 조선일보가 LG텔레콤 선정을 환영한 이유를 독자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신문읽기’의 혁명 중에서).”

 기간통신사업자 B씨의 증언.

 “PCS통신제조업군에서 LG텔레콤과 경쟁하던 에버넷이 탈락한 것에 중앙일보가 채점방식을 이유로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정치권과 일부 언론, 탈락업체가 제기한 선정의혹의 그림자는 바람을 타고 불길처럼 7월 국회로 번져 나갔다. 불길한 조짐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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