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호프만의 실리콘밸리 미래](10) 밸리의 엔젠들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아메리카니티스(Americanitis)”라는 말이 있다. 이는 순전히 ‘미국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미국인인 필자는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어떠한 지역도 혁신에 있어서 예외일 수 없다고 본다. 최근 실리콘밸리와 같은 곳이 세계 다른 지역에도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스스로 ‘아메리카니티스’로 취급받는 것을 원치 않기에 대답은 당연히 “그렇다”이다. 실리콘밸리는 아시아·인도·유럽·이스라엘 등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며 오늘도 기술 혁신 성공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에는 분명 그만의 특별함이 있고 벤처 투자의 집산지라는 것이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특성이기도 하다. 필자는 해외에 지사를 둔 신생 기업 네 곳과 일을 하고 있는데 네 개 회사 중 세 곳은 본사를 실리콘밸리로 옮기거나 적어도 실리콘밸리에 지사를 설립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신생 벤처는 자국의 제한적인 벤처 자본 지원, 까다로운 절차와 과정으로 애를 먹고 있다. 그들은 자국의 지역 벤처 투자자가 기술 분야의 현재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은행원처럼 보수적이고 사무적으로 자신을 대한다고 말한다. 미국에는 다른 나라보다 벤처 투자자가 더 많고 미국 벤처 자본의 40% 이상이 실리콘밸리에서 유통된다. 또 실리콘밸리의 개인 펀드 비중은 점점 증가하며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소액 투자일수록 위험성은 적어지고 좀 더 실용적인 분야에 투자될 수도 있다. 그렇게 신생 벤처는 적은 자본금으로 수익을 내고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현금 흐름을 원활히 할 수 있어 실리콘밸리는 투자자와 신생 벤처가 상생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실리콘밸리 투자자는 알게 모르게 자신의 편리한 투자 환경에 적응된 상태다. 그들은 세계적인 A매치 경기를 시청하고 저명한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의 저서 ‘모든 세상은 평등하다’를 읽으면서 글로벌한 시야와 마인드를 갖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으로 ‘세상은 거대하지만 감사하게도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은 실리콘밸리에 있다’라는 식의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실리콘밸리에 둥지를 튼 기업에게 투자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하다.

 투자 기업의 수익성과 잠재성을 차치하고라도 일단 여러모로 편리하기 때문이다. 원하면 곧바로 신생 벤처 사무실로 달려갈 수 있지 않고, 비행기를 타기 위해 불편한 공항 보안 절차를 거치고 몇 시간을 비행기 안에 갇혀 있을 필요 없이 손쉽게 CEO와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지 않은가. 물론 몇몇 벤처 회사는 해외에 예외적으로 사무실을 열지만 어떤 경우는 사업상 중요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기업처럼 보이려 하거나 세금 감면을 위해 선택한 마케팅 전략에 더 가깝다. 핵심은 실리콘밸리에 있는 벤처 투자자 도움을 받고 싶다면 그들 근처에 위치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거다.

 두 번째, 실리콘밸리에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개발자, 법률가, 협상 전문가들은 전 세계에 포진해 있다. 그렇지만 실리콘밸리의 전문가는 창업에 전문화된 인력이고 이미 풍부한 성공 경험을 갖고 있다. 그 경험은 벤처 창업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사실 실리콘밸리에서 인력을 고용하는 데에는 특정한 주기가 있다. 대담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신생 벤처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기업에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일을 추구하는 인재들이 몰린다. 하지만 이 기업이 성공하지 못하면 인재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다. 또 이 기업이 성공하더라도 이후 12~36 개월 동안 대부분의 벤처 창업 멤버는 그들의 개척 정신이 더 이상 발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자각하고 조직을 떠난다. 실리콘밸리의 인력은 이런 식으로 순환 된다.

 얼마 전 스탠포드 대학 캠퍼스 팔로알토 근처 카페에서 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신 적이 있다. 아이패드를 갖고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 사람들, 정장 차림의 법률가들, 다양한 생김새의 외국 사업가들. 그곳에서 그들이 내뿜는 엄청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이가 “우리는 성공할 수 있어!”라는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실리콘밸리의 진면목이리라. 세계 신생 벤처가 실리콘밸리를 고집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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