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앞서간 대만, 바로 옆 중국, 좌충우돌 한국.’
한·대만·중국 팹리스를 비교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한국과 대만의 팹리스 역사는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 격차는 너무 크게 벌어졌다. 늦게 뛰어든 중국은 한국과 대만을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한국 팹리스는 한국 IT 산업의 기대주로 각광을 받았다. IMF 이후 삼성과 LG, 현대 출신의 반도체 전문가들이 창업한 팹리스가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으며 성장가도를 달려 매출 2000억원을 눈앞에 둔 기업이 두 개나 나왔던 시기다.
2004년에는 팹리스 평균 매출이 108억원에서 190억원으로 두 배나 뛰어올랐다. 2007년까지 매년 직원 수도 증가했다. 그 무렵에는 글로벌 기업들에 국내 팹리스가 1000억원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매각되기도 했다. 파운드리를 비롯해 생태계가 잘 조성된 대만 팹리스를 부러워했지만 못 넘을 벽은 아니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단기 성과에 급급했던 한국 팹리스는 지금 쓰라린 성장통을 앓고 있다.
당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던 대만 팹리스는 이제 팹리스 강국이라고 지칭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강자의 위치에 올라섰다. 지난해 국내 상위 팹리스 기업들 가운데 1000억원의 매출을 돌파한 기업은 실리콘웍스 1개사로 오히려 축소됐으나 대만은 10억달러(1조2000억원) 이상 매출을 기록한 팹리스 기업이 지난 2009년 1개사에서 3개사로 확대됐다. 대만 최대 팹리스인 미디어텍은 지난해 36억1000만달러의 매출액을 올렸으며, 뒤이어 노바텍과 M스타는 각각 11억4500만달러와 10억6000만달러를 달성했다.
2009년 대만 팹리스는 250여개 기업이 3조8590억대만달러 매출을 기록해 기업당 평균 580억원가량을 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에서는 실리콘웍스가 2570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유일하게 1000억원대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한국의 팹리스는 180개 정도가 있다. 이 중 반도체산업협회가 조사한 주요 47개 기업의 2009년 매출은 1조원가량으로 대만 한 회사의 매출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와 견주어 중국 팹리스는 한국 팹리스가 성장하던 시기 막 태동하는 모습을 보인 정도였다. 전시회에 내놓은 제품도 우리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조잡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대만 팹리스 성장의 큰 장애물로 인식될 정도로 중국 팹리스들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승승장구해왔던 대만의 미디어텍이 최근 제동이 걸린 것은 다름아닌 중국의 한 팹리스 기업 때문이다. 스프레드트럼이라는 반도체 기업은 미디어텍에 맞서 ‘기술지원은 똑같이, 가격은 더 저렴하게’라는 모토로 접근하면서 미디어텍이 휩쓸다시피 한 중국 휴대폰 칩 시장을 잠식해갔다. 스프레드트럼은 나스닥에 상장된 중국의 팹리스 기업으로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31.5% 증가한 1억2650만달러(약 15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중국의 팹리스 산업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보조금지급, 국산제품 사용촉진 등을 통해 팹리스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2008년 선전해사반도체유한공사는 5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을 정도다. 중국 팹리스 기업 수는 대략 300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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