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사람들은 연구개발(R&D)을 사업 콘셉트를 잡는 단계 정도로 한정지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습니다.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구체화한 뒤 양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R&D의 범위입니다. 앞으로 R&D 전문 서비스 기관인 기정원이 해야 할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윤도근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이하 기정원) 원장(58)은 기관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윤 원장은 지난해 12월 취임했다. 그는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미 업무 전반을 상세히 파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윤 원장은 중소기업 관련 업무라는 ‘한우물’을 30년 동안 파온 중소기업 전문가다. 현재 기정원에서 맡고 있는 사업 중 20~30%는 윤 원장이 중소기업청 재직 당시 추진했던 사업이기도 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따라서 전문성과 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더욱 전문화된 R&D 및 정보화 지원 전문 기관으로 기정원이 발돋움하는데 기여하겠다는 게 윤 원장의 목표다.
-기정원의 올해 주력 과제는 무엇입니까
▲지난 2002년 설립된 뒤, 계속 성장하고 있는 기관이 바로 기정원입니다. 2006년부터 R&D 사업을 추진했는데 정부 위탁사업 예산이 2006년 633억원에서 2011년 3056억원으로 5배 가량 늘었습니다.
현장 실용 기술 중심의 R&D 지원으로 높은 사업화 성과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맞춤형 생산관리시스템 구축 및 SaaS 등 신개념 정보화 지원으로 중소기업 정보화 수준도 향상됐습니다.
저희가 지원하는 중소기업의 정보화 수준은 2008년 65.85점에서 2009년 66.76점으로 대기업 대비 93.8%에 이릅니다. 일반 중소기업과 비교하면 122.3%입니다. 이제 명실상부한 중소기업 R&D 전담 전문기관으로 성장할 기반이 마련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정원은 올해 비전을 ‘중소기업 성장에 기여하는 R&D 중심의 전문 서비스 기관’으로 삼았습니다. 이를 위해 R&D 지원 실효성 제고에 힘쓸 것입니다.
현실에 맞는 정보화 지원과 산업현장 기술인력 육성 역시 올해의 주력 과제입니다. 예산도 전년 대비 62%가량 증가해 중소기업의 사업을 지원하는 중기멘토 역할에 집중할 방침입니다.
-R&D 지원 실효성 제고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입니까.
▲일단 평가위원 수를 현 3400명에서 1만명 수준으로 늘릴 것입니다. 위원 1인당 과제도 연간 5건 이내로 줄일 생각입니다.
그동안 한정된 인원이 지원대상 선정 평가 관리를 하다 보니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위원 한명이 너무 많은 평가 과제가 주어지면 평가가 부실해질 수 있습니다. 꼭 지원을 받아야 할 알짜 중소기업이 평가에서 탈락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고요. 위원 수 증가는 평가관리 전문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평가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도 고려 중입니다. 기업들이 제때 기술개발에 착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서류 심사항목 중 꼭 필요한 것만 추린다면 기간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달라진 추세에 맞춰 장기적으로는 평가 지표도 손을 볼 생각입니다.
-최근 국립 마이스터고 관할 업무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중소기업청으로 이관됐습니다. 이에 따라 기정원의 역할도 커졌는데, 어떤 계획을 갖고 있습니까.
▲최근 공업·농업·상업 등 전문계 고등학교 재학생의 대학 진학 비율이 약 70%에 달합니다. 현장으로 취업하는 학생은 30%에 못 미칩니다. 원래 현장에 필요한 산업 인력을 육성한다는 목적으로 세워진 전문계고지만, 대부분의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습니다. 학과 교육과정 역시 전문적인 기술을 익히는 데는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현장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유입되는 인력이 적고, 그마저 실력이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바로 그것입니다. 중기청에서도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마이스터고등학교입니다. 산업 현장에서 전문 기술을 발휘할 수 있는 명장(마이스터)과 같은 인력을 육성하자는 취지에 따른 것입니다. 하지만 교육부 관할이다 보니 아무래도 유기적인 정책 실행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번 이관은 이런 한계를 개선하자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1월에 교과부 차관 주재 전문가 회의에서는 국립 마이스터고를 중기청으로 이관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부각됐습니다.
또, 인력을 양성하는 일도 R&D의 일부분입니다. 그래서 R&D 전문 기관인 기정원이 마이스터고 사업을 맡게 된 것입니다.
기정원에서는 일단 부산기계공고·전북기계공고·구미전자공고 세 곳의 국립 마이스터고를 로봇산업 현장인력 양성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입니다.
이들 학교는 21개 마이스터고의 선도 모델로 성장할 것입니다. 교원 연수, 교과 연구회, 숙련기능인력 양성과정 등을 집중 지원받습니다. 산업 현장의 명장이 직접 학교를 방문해 기술을 지도하고, 학생들은 정기적으로 현장을 찾아가 산업을 익힙니다.
이렇게 우수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청년실업난 및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에도 기여할 것입니다. 기정원에서는 올 한해 관련 사업에 60억원을 투입할 계획입니다.
-중소기업 기술 유출 원천 봉쇄를 위한 계획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최근 3년간 기술 유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을 보면, 유출 사건 1건 당 평균 피해금액이 10억2000만원에 달합니다. 3년간 중소기업 피해액 추정치는 4조2000억원에 이릅니다.
기술 유출로 인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에 도움을 주는 제도는 거의 없습니다. 사후 대책도 중요하지만 사전 예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정원과 국정원, 경찰청이 연계해 기술 유출을 사전에 방지하는 체제를 운영하려고 합니다. 업체는 기술을 보호해달라고 기정원에 신청만 하면 됩니다. 장기적으로는 기술보호 인증 체제를 개발해 인증기업과 손해보험 상품과의 연계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1인 창조기업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정원의 관련 사업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저희 사업 중에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센터’가 있습니다. 비즈니스 공간, 전문가 상담, 경영 서비스 등을 제공합니다. 지난해 17개에서 올해는 29개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또 R&D 지원도 계획 중입니다. 지식서비스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 비용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조직 성장을 위해 중점을 두고 있는 곳은 어느 분야입니까.
▲일단 모두가 일하는 실무주도형 조직체계를 구축하려 합니다. 다단계 수직조직이었던 것을 팀제를 융합한 수평조직으로 바꿨습니다. 부서별로 독자적 업무 수행을 했던 것을 전사적인 기획관리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독자사업을 통한 수익 창출도 하나의 과제입니다. 우수 인력을 확충할 수 있는 선순환구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단계로 복잡한 의사결정체계도 최대 4단계로 최소화했습니다. 직급 명칭 역시 사원으로 단순화했습니다.
인사 전반에 걸쳐 경쟁 시스템도 도입합니다. 조만간 1기 공채 직원이 들어옵니다. 이들에게는 과거에 비해 훨씬 전문적이고 매력적인 기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기정원의 올해 신규 사업은>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은 올해 여섯 가지 신규 사업을 추진한다. 구체적으로는 △클라우드형 IT 기반 경영혁신강화사업 △모바일오피스 구축사업 △제조공정 IT 융합 기술개발사업 △IT 전문 인력 지원사업 △IT 중소기업 역량강화사업 △국립마이스터고 등이 있다.
클라우드형 IT 기반 경영혁신강화사업은 중소기업 생산성 향상과 경영효율을 위해 클라우드 기반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지원 대상 중소기업의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 사용료 중 1차 년도에는 서비스 사용료의 70%(최대 1300만원), 2차 년도에는 50%(최대 700만원)를 지원한다.
모바일오피스 구축사업은 중소기업이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활용해 업무지원시스템 사용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AP, 무선인증서버 등 무선네트워크 장비 도입과 구축 지원도 포함된다. 모바일시스템 구축을 위해 총 사업비의 60%(최대 6000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제조공정 IT 융합 기술개발사업은 뿌리산업을 중심으로 업종별 IT 융합시스템 개발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실용화 가능한 IT융합시스템 개발 아이디어를 보유한 중소 제조기업 클러스터에 1년간 1억5000만원 한도에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중소기업의 IT 전문인력 채용을 위해 최대 8개월 동안 지원인력 급여의 50% 이내를 지원하는 IT 전문인력 지원사업도 실시한다. 또한 IT 중소기업 역량강화사업과 국립마이스터고 운영 역시 기정원이 올해 신규로 맡게 된 사업이다.
<윤도근 원장은>
윤도근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장은 중소기업 전문가로 꼽힌다. 1981년 중소기업청의 모태가 된 공업진흥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중소기업청 기획예산법무담당관, 판로지원과장, 기업협력과장, 감사담당관, 대구경북중소기업청장 등 30년 동안 줄곧 중소기업 관련 업무를 맡아왔다.
판로지원과장 재직 당시에는 ‘공동상표시스템’ 구축에 공헌했으며, 기업협력과장으로 일하면서는 대중소기업협력체제를 위한 ‘납품단가조정협의시스템’을 도입했다.
대구경북중소기업청장 시절에는 섬유·자동차부품 중심인 지역 산업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한방과 문화콘텐츠라는 신사업을 발굴, 지역에 뿌리내리는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그는 인력 수급과 관련해서도 인력실태조사시스템을 개발, 교육과학기술부와 연계해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기초를 세웠다는 평가다.
기정원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공식과 비공식을 가리지 않고 직원들과 만남의 자리를 지속적으로 마련했다. 업무 파악과 직원들의 애로 사항을 듣기 위해서다.
좌우명인 ‘무실역행(務實力行)’이 말해주듯, 그는 언제나 맡은 일을 참되고 실속 있게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직원들에게 언제나 주인 의식을 가지라고 당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1월부터는 매달 직원들에게 기정원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출하도록 독려 한다. 이를 통해 직원들이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갖고 업무에 임할 것이라는 바람에서다.
박창규기자 k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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