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만 바꾸시면 33만원을 드리고요. 인터넷과 TV, 집전화까지 한꺼번에 바꾸시면 55만원을 드릴게요. 요새는 자전거 말고 현금으로 드려요. 계좌번호 알려 주시면 입금해 드립니다."
24일 오전 초고속인터넷 가입 상담 번호(1644-××××)로 전화를 걸자 안내원은 바로 A사 인터넷에 가입하라고 권유했다. A사 인터넷이 타사에 비해 현금을 5만원은 더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 상담원은 "단속이 나오면 잠시 (경품이) 줄긴 하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똑같이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한 현금 살포 경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가 과도하게 요금을 감면하고 지역별로 차별적인 경품을 지급했다며 방송통신위원회가 총 78억9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장에서는 여전히 현금을 경품으로 지급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경품 공세가 사업자의 투자를 가로막고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실제로 통신 3사의 초고속인터넷 사업은 `레드오션`으로 변한 지 오래다.
KT는 2006년 매출 2조1032억원을 기록한 이후 2008년 2조200억원, 2009년 1조9067억원으로 계속 하락하다가 지난해에는 1조8809억원까지 내려갔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해 매출 1조1066억원을 기록했고, LG유플러스는 매출 6913억원을 올렸지만 초고속인터넷 사업이 호조를 나타냈다기보다는 이동통신과 인터넷TV(IPTV) 결합으로 인한 매출 상승 효과가 컸다는 분석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올해 초고속인터넷 전체 매출이 사업자 간 공격 마케팅이 심화되고 결합 할인이 증가해 지난해 대비 0.6% 역성장한 약 4조3000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도 사업자들은 합법적인 경품(3년 약정 시 25만원 상당 경품 지급 가능) 이상을 `살포`하며 사업을 지탱하고 있다.
실제로 KT는 특정 가입자에게 최대 81만원의 경품을 지급했으며 LG유플러스는 62만원, SK브로드밴드는 무려 91만원이나 주다가 방통위에 적발됐다. 2009년 10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초고속인터넷에 새로 가입한 이용자 191만6426명 중 50% 이상(KT 가입자 중 40.1%, SK브로드밴드 61.2%, LG유플러스 53.1%)이 경품을 과도하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품 없이 인터넷에 가입하면 손해라거나 인터넷은 자주 해지하고 재가입할수록 이익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사업자들은 초고속인터넷은 결합상품을 구성하는 데 핵심 서비스이기 때문에 손해를 보더라도 가입자를 모으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한국 초고속인터넷 사업은 IT강국을 만든 밑거름이 됐지만 지금은 이동통신 과다 보조금과 함께 `경품 코리아`로 변질시킨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유통 중개인들이 사업자를 옮겨 다니면서 소위 `가입자 장사`를 벌이고 있어 소비자가 이익을 받기보다는 중간 유통상만 수익을 챙기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변승재 대우증권 연구원은 "과도한 마케팅비는 통신시장을 해치고 차세대 망 투자를 더디게 하는 원인이 된다"며 "통신사업자의 자율적 자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 차원에서 제재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손재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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