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희망이다]엔젤투자자, 그들이 찾는 `스타트업`은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엔젤 투자자 19명 대상 설문

 ‘벤처 생태계’가 있다. 스타트업(Start-Up) 기업이 창업해 적절한 시점에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 자신이 갖고 있는 아이디어와 기술을 상용화하고 마케팅을 펼쳐 시장을 넓혀간다. 그리고 회사를 넘기거나 또는 다른 회사를 인수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코스닥 등 주식시장에 상장해 자체 자금을 조달한다. 이 과정에서 하나라도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벤처 생태계가 단절된다고 말한다. 스타트업기업이 기술을 상용화하는 시점에 벤처캐피털과 함께 엔젤(개인)투자자가 참여한다. 주로 벤처캐피털은 상용화 이후 시점에 진입한다. 정부 지원 자금으로 가능하지만 미국에서는 제품 개발단계에서는 엔젤투자자가 큰 역할을 담당한다. 전문가들은 이 시점에서 엔젤투자자가 참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멘토로서의 역할이 필요해서다. 기술 스타트업기업은 전문가의 조언과 자문이 매우 중요한 만큼 벤처기업을 직접 경영하거나 또는 벤처 자문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가 멘토로 나서면 스타트업기업이 시장에 안착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엔젤은 ‘믿음’이 있어야 투자=전자신문이 19인 엔젤투자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은 스타트업기업의 멘토로 나설 의향이 매우 높다. 전체의 73.7%가 주 1회 이상 피투자 벤처기업의 자문에 나설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 투자자의 대부분이 현재 벤처기업의 임직원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당한 애착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노하우 그리고 과거 벤처를 경영하면서 경험했던 실패 사례를 적극 전수하겠다는 의지다. 빠르게 아이디어·기술을 상용화해 시장에 보급해야 하는 스타트업 기업인들은 수많은 판단의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순간에 어떤 판단을 내릴지가 회사의 운명과 직결된다. 상당수 CEO가 기술에만 매진하다 보니 중요한 판단에서 실수를 하기 쉽다고 많은 벤처인들은 말한다. 혹자는 ‘자기 기술에 도취돼 외부 기술변화 환경을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런 ‘착각’ 또는 ‘실수’를 막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자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첫 번째 창업자보다는 1~3번 실패한 창업자를 더 높이 평가한다. 이와 관련, 실리콘밸리에서 투자하고 있는 한 벤처캐피털리스트는 “회사를 경영하다 보면 비슷한 판단의 순간에 자주 봉착하게 된다”며 “그때 과거의 실패 경험은 크게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엔젤투자자들은 CEO를 보고 투자여부를 정한다. 투자결정 시 무엇을 중점적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전체의 절반 이상인 55.0%가 CEO의 이력 및 자질을 꼽았다. 투자 후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자문을 할 계획인 만큼 이를 잘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는지를 보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세규 코아비즈엔젤클럼 회장은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해도 CEO가 제대로 자질을 갖추지 못하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회사 창업이라는 게 사람이 하는 만큼 사람을 많이 보고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서영석 인큐베이팅엔젤클럽 회장도 “엔젤투자가 어떤 규약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믿고 하는 것”이라며 “엔젤투자자들은 CEO가 뛰어나야 기술개발도 사업도 성공한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는 스타트업기업 CEO에게서 가장 필요한 것에 대한 질문에서 ‘신뢰감’이 47.4%로 ‘해박한 기술에 대한 지식’(26.3%)과 ‘영업력’(15.8%) ‘리더십’(10.5%)보다 높았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투자업체 발굴에서도 잘 나타난다. 전체의 89.5%가 ‘주변 인맥을 통해 찾는다’고 답변했으며 ‘신문 등 언론’이 10.5%였으며 ‘기업체의 제안을 검토해 결정한다’는 엔젤투자자는 한 명도 없었다.

 ◇‘투자손실’도 충분히 고려=‘엔젤투자자’ 하면 과거 벤처 버블기 ‘묻지 마 투자자’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특별히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돈 된다’는 이유만으로 투자하는 경우다.

 하지만 이번 설문 결과, 그런 투자자들은 국내에 ‘없다’고 단정해도 될 수준에 왔다. 이는 투자 시 자금회수 확률에서 잘 알 수 있다. 전체의 52.6%가 회수 확률이 50%를 밑돌 것으로 내다봤다. 고심해서 결정했고 그리고 꾸준히 자문을 펼치면 성공을 기원하겠지만 상당수 엔젤투자자들은 스타트업기업이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기술 스타트업기업의 성공확률은 채 몇 %밖에 안 된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될 성싶은 기업을 고른다고 해도 그곳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맞아야 하는 등 운이 따라야 한다. 그런 곳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성공 엔젤투자자인 제프 클라비어 파트너는 “처음에는 손해 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면서 엔젤투자의 어려움을 밝히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국내 엔젤투자자들은 이런 낮은 투자성공률을 잘 알고 있음이 입증된 것이다.

 투자 성공 시 기대수익률은 2~5배(이하 투자 대비)와 4~10배가 각각 45%였다. 일반적으로 벤처캐피털업계에서 3~4배 정도만의 수익을 내면 ‘크게 성공했다’는 평가를 하는 것을 감안하면 엔젤투자자의 기대수익률이 벤처캐피털에 비해 크게 높은 것이다. 이는 초기기업의 경우 검증되지 않은 곳인 만큼 투자성공 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엔젤투자자가 찾는 투자기업은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1~2년차다.

 ◇업체당 투자규모는 1억 미만=최근 벤처캐피털의 투자규모는 3억원에서 5억원, 많게는 10억원을 넘어설 정도로 커졌다. 이는 벤처캐피털이 안정 위주의 자금운영을 하면서 상장 직전의 후기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운영 자금은 많이 늘어났으나 코스닥 상장업체 수는 정해져 있고, 인수합병(M&A) 등 미국에서 보편화돼 있는 자금회수(Exit) 기법은 국내에서 활성화가 안 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번 조사결과 엔젤투자자 47.4%는 1000만~5000만원, 26.3%는 5000만~1억원으로 4명 중 3명이 1억원 미만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벤처캐피털 업체와는 확연하게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이와 관련, 서영석 회장은 “제조업체 경우 1억원 이상의 자금유치를 원하겠지만 최근에는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 등 큰 자금이 필요치 않은 곳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자금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면서 투자자로부터 기대하는 자금규모도 줄었다. 스마트폰용 게임 ‘두들 점프’로 크게 성공한 리마 스카이의 이고르 푸세냑 CEO는 “컴퓨터는 있었고, 아이폰 라이선스 등록비 100달러가 투자의 전부였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마이크로(Micro) 벤처캐피털’ 개념이 확산하고 있다. 과거 500만~2000만달러를 기본적으로 투자했으나 최근에는 20만~50만달러만을 요구하는 곳이 늘었다. 예전과 비교해 클라우드컴퓨팅 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하드웨어 투자비를 크게 줄일 수 있으며 마케팅비용 역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커뮤니티를 활용한다면 거의 안 들어서다. 이런 여건을 고려한다면 엔젤투자자가 스마트 시대에 가장 적합한 투자자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 이번 조사에서 선호하는 투자대상 스타트업기업 CEO 경력 질문에서 절반을 크게 넘는 57.9%가 ‘특별히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기업을 포함 기업이 31.6%였으며 연구소와 석·박사 또는 교수는 각 5.3%였다. 이는 엔젤투자자의 투자결정 시 기술과 아이디어보다는 CEO의 자질을 본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경력을 크게 고려하지 않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소박스>엔젤투자자여 날아라

 벤처업계에서 ‘엔젤투자자’란 말을 듣기가 좀체 쉽지 않다. 엔젤투자자가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대외적으로 공개를 하지 않고 활동하고 있는 투자자들도 다수 있지만 공식적인 통계만을 볼 때 그 수치는 크게 하락세다. 대표적으로 펀드 결성 현황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엔젤투자자들이 만든 펀드는 한 건(2억원)에 불과했으며, 2008년에는 한 건도 없었다. 벤처투자 열기와 함께 개인들이 대거 벤처투자자를 자청했던 2000년 57건(361억원)과 큰 차이다.

 엔젤투자 규모를 봐도 명확히 나타난다. 중소기업청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엔젤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유치한 업체는 1291개에 달했고 투자유치금액도 5493억원에 이르렀으나 매년 감소세를 기록해 2004년부터는 업체 수와 금액이 각각 194개사 463억원에 불과했다. 이후 다소 오르기도 했지만 다시 2008년 152개사 492억원으로 낮아졌고, 2009년에는 엔젤로부터 자금을 유치한 기업은 87곳, 유치금액은 346억원으로 하락했다.

 미국의 경우 2008년 전체 279억달러 벤처투자 가운데 엔젤투자자에 의한 투자가 무려 190억달러에 달한다. 엔젤투자자가 미국의 벤처투자를 이끌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지원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서 흡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변화하고 있다는 면이 주목된다.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벤처기업 CEO가 엔젤펀드를 결성 시 정부 모태펀드에서 일정부분 지원해주는 ‘엔젤투자 매칭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모태펀드가 벤처펀드 결성에 크게 기여한 만큼 엔젤투자 활성화를 위해 엔젤투자자의 펀드 결성 지원에도 나선다는 전략이다.

 민간에서도 움직임이 있다. 최근 벤처기업협회는 프리보드기업협회, 소셜금융플랫폼 머니옥션과 ‘벤처기업 엔젤투자 활성화를 위한 업무 협약식’을 체결했다. 두 협회는 비상장 유망 중소벤처기업을 발굴해, 머니옥션에서 활동 중인 엔젤투자자들에게 추천하게 된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투자자는 유망한 초기벤처기업에 대한 정보 창구가 부족해 소수의 투자자만이 지인 네트워크를 통해 엔젤투자에 참여해 왔다”며 이번 협약이 국내 엔젤투자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