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헝그리 정신이 가른 성공과 실패

지난 26일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에서 개막된 반도체 장비 전시회인 ‘세미콘코리아 2011’은 하루 종일 활기가 넘쳤다. 지난해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의 투자 확대로 큰 매출 성장을 이룬 국내외 장비기업들은 화려하게 부스를 차리고 고객사 방문에 분주했다.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가 올해에도 지난해 못지않는 투자를 집행할 계획임이 알려지면서 장비업체들은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고 건투를 빌기도 했다. 사실 지난해 국내 장비업체들의 선전은 눈이 부실 정도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사상 최대인 4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한 것으로 전망되며 삼성계열사인 쎄메스는 70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당수 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다. 본지가 국내 상위 10개 장비업체의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을 조사한 결과, 10개 업체의 매출 총액은 전년 대비 2.5배 증가한 1조2558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장비업계와 거의 같은 시기에 태동한 팹리스(반도체 전문설계업체)의 상황은 정반대다. 매년 2개 이상을 배출해왔던 1000억 클럽 기업 수가 1개로 줄었다. 비교적 최근에 사업을 시작한 신생 팹리스 기업들은 그나마 선전하고 있지만 이른바 팹리스 스타기업들은 정체 혹은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사실 최근까지도 정부나 투자자들은 장비기업보다는 팹리스기업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우선 팹리스 기업 대표 면면을 살펴보면 화려한 학벌을 자랑한다. 대부분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벤처 붐, LG반도체와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 통합 등을 계기로 사업에 뛰어든 인물이 상당수다. 뛰어난 학벌, 대기업 근무 경험, 젊은 인재들로 대표되는 팹리스는 조만간 세계 시장을 호령할 듯했다.

 이에 비해 장비기업 CEO들은 팹리스 기업보다 면면이 화려하지 않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사장이나 고석태 케이씨텍 회장 등은 대기업 출신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팹리스 CEO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강단과 헝그리 정신이 있다. 주성은 지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누적적자가 1200억원에 이르면서 회사 존립마저 위협받을 정도였다. 세계 최대 장비업체인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로부터는 특허 제소까지 받았다. 최근 승소를 했지만 이 때문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데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장비업체 CEO들은 직원들을 보듬고 R&D에 더 투자하고 영업일선에 직접 나섰다. 수요처의 핀잔은 이들에게는 각성제였다.

 팹리스 기업들이 국내에 머물 때 장비업체들은 재빨리 해외 시장을 개척했다. 최근 해외 장비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확대하는 요인 중의 하나는 국내 장비 업체들과 협력기업들의 기술력이 그만큼 향상됐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팹리스 기업들의 입장에서도 할 얘기가 적지 않다. 대만과 달리 파운드리(위탁생산) 서비스도 부실하고 수요처기도 한 대기업의 반도체사업부와 경쟁해야 하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국내 팹리스 기업과 장비업체의 성공과 실패 여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장비산업이 발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10위권 내 국내 기업 명단은 없다. 그러나 앞으로 5년 이내에 분명한 성패가 갈릴 듯싶다. 성패의 관건은 누가 더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하고 성공에 대한 열망을 갖는지다. 팹리스 기업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유형준 반도체디스플레이팀장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