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도 사람들처럼 일종의 `소셜 네트워킹`을 한다. 다만 사람들이 대화와 공유를 통해 친구를 사귀거나 비즈니스를 꾀하는 반면 식물들은 생존을 위해 신호를 주고받는 필사적인 네트워킹을 한다.
식물들은 해충이나 병균에 대한 저항력을 키우기 위해 동종 식물끼리 신호를 전달할 뿐 아니라 잎과 잎, 또는 잎과 뿌리 간 신호를 전달하는 활동을 하며 흙 속에 있는 유익한 미생물과도 신호전달을 통한 네트워킹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식물과 미생물 간에 서로 긴밀한 대화를 한다는 사실이 주목을 끈다.
류충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팀은 식물이 해충 공격에 대항해 면역을 증진시키기 위해 뿌리 주변의 유익한 미생물을 유인하는 현상을 최근 규명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생태학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인 영국 `생태학지(Journal of Ecology)` 1월호에 게재됐다. 우리나라 과학자가 주도한 연구성과가 이 학술지에 발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류 박사팀은 식물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해충이나 병원균의 공격을 지하 흙속에 있는 뿌리에 신호를 전달해 알리고, 면역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세균과 곰팡이를 뿌리 주변에서 유인해 밀도를 높이고, 이로써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해충의 공격에 대비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식물이 미생물을 활용해 면역력을 높이는 셈이다.
이번 연구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밭작물인 고추와 고추 잎사귀에 서식하며 체액을 빨아먹고 고추의 성장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해충 `온실가루이(whitefly)`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류 박사팀은 연구를 통해 고추가 잎사귀에 있는 온실가루이의 공격을 받자 뿌리분비액에 포함된 유인 신호로 뿌리 주변의 유익한 미생물을 끌어들여 자체면역을 증진함으로써 향후 온실가루이가 효과적으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대비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온실가루이 공격을 받은 고추는 다른 병원균에 대해서도 면역력이 높아졌다. 잎과 뿌리에 세균병원균(궤양병, 청고병)을 접종한 결과 병증 진전이 현저히 감소하는 것으로 관찰됐다.
류 박사는 "뿌리분비액에 포함된 유인신호가 정확히 어떤 물질인지 규명되지 않았는데 그것을 알아내면 해충이나 병균에 강한 식물을 재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방제가 힘든 해충을 농약 없이 퇴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 박사는 2년 전 동종 식물 간 네트워크를 통한 면역력 증진효과에 대한 논문도 발표한 바 있다. 병원균에 감염된 식물이 주위 식물들에 냄새(휘발성 재스몬산)를 풍겨 병원균이 공격하고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주변 식물들은 해당 병원균에 저항력을 증강시킨다는 내용이다.
식물은 또 한 잎이 해충이나 병원균에 공격받으면 다른 잎(같은 식물)에도 이러한 신호를 보내 저항력을 높인다.
이 같은 현상은 식물과 식물 간에 대화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식물의 주요기관 간 대화도 매우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 용어설명 >
뿌리 주변 유익한 미생물 : 식물 뿌리에 서식하면서 식물의 생장을 촉진하고 식물의 면역을 증진시키는 세균과 곰팡이 군을 통칭한다.
[매일경제 심시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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