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색으로 치장된 38층의 초고층 해운대 주상복합건물에 화재가 나고, 화재 안내 방송조차 없어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보도에 방재시스템 재정비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과 함께 또 다시 잊어져 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최첨단 방재시설을 갖춘 두바이의 160층 건물 ‘부르즈 칼리파’ 등 외국 초고층 빌딩의 엄격한 방재시스템과 국내 현실을 비교하면 많은 차이를 느낀다. 내연성 마감재의 선택, 피난안전구역의 다중화, 소방장비의 선진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무엇보다 자동 비상안내 방송시스템과 같은 시스템장비의 선진화도 급하다.
초고층 건물뿐 아니라, 산업단지, 공항, 역이나 터미널 등 공공시설 역시 단일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어 건물 간 통신이 어렵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비상전달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국내 비상화재방송 시스템 기술은 시대적 흐름인 ‘디지털화’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건물은 점점 고층화, 대규모 단지화되어 가는데 아직도 기존 단일 건물에 사용하던 방식을 답습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디지털 기반의 비상방송 시스템이 구축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우선, 유연성과 확장성이다. 디지털화되면 여러 개의 오디오 정보 신호가 하나의 네트워크 선로를 통해 통합 전달되므로, 대규모 단지의 여러 방송 시스템을 하나로 묶는 것이 가능해 진다. 이렇게 되면 한 건물에서 불이나 모든 방송이 중지된다고 하더라도 다른 건물의 비상방재시스템에서 이를 파악해 보다 신속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둘째, 시스템 핵심장비의 이중화와 분산배치가 가능하다. 비상화재 방송은 생명과 직결되므로 시스템의 안정성은 반드시 확보되어야 한다. 디지털화로 시스템과 네트워크 선로 이중화가 가능하므로 안정적인 시스템 운영이 가능하다. 미국의 세계무역센터(WTC) 빌딩이 9·11테러 이후 모든 시스템을 디지털로 통합, 어느 곳에서도 화재탐지와 경보 전달이 가능하도록 구조화한 사례를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셋째, 화재 시 자동 비상안내방송을 인텔리전트하게 구성할 수 있다. 단순히 전 건물에 ‘불났으니 피하라’는 명령형 대피방송을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니라, 발화지점을 안내방송하고 각 층별로 평시에 준비한 대피 안내 메시지를 자동으로 방송함으로써 신속한 대피를 유도할 수 있다. 비상구의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안내방송을 내보내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는 인텔리전트 자동 비상안내방송이 가능하다.
끝으로, 화재안내방송시스템의 디지털화는 정부의 녹색정책에도 부합된다. 방송시스템을 디지털화하면 현재 아날로그 시스템보다 사용전력을 약 45%이상 절감할 수 있다. 환경문제가 심각한 현실에 비추어 전력효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겉만 화려했지 정작 소중한 생명의 안전을 담보하는 디지털기반의 비상방송시스템 조차 갖추지 못한 현행 초고층 건물 관리체계는 제2, 제3의 ‘해운대 화재사고’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국방부, 행정안전부, 국토해양부, 조달청 등 정부부처는 물론 공공기관에서 이전사업을 대단위로 추진하고 있다. 우선 대외적 상징성을 갖는 공공건물부터 디지털방송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유사시 화재피해를 최소화하고 에너지 절감은 물론이고 해운대 화재와 함께 타버린 디지털 IT강국의 자존심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것 아닐까.
이상운 동아방송예술대학 방송기술과 교수 imsulee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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