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사급제도 확대가 대 · 중소 동반성장?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취지로 도입이 늘고 있는 ‘원·부자재 사급제도’가 일부 파행 운영되고 있다. 제도에 따른 원가절감 효과를 대부분 대기업들이 독식하거나 중소기업체의 부품 원가 공개 수단으로 오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급제도’는 대기업이 물품 제조에 필요한 원자재를 일괄 구매해 협력사에 일정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하반기 지식경제부와 국내 굴지 대기업들이 ‘대·중소 동반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확대 시행하고 있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중소 협력사들 사이에서는 사급제도가 본래 취지와 달리 대기업들의 잇속 챙기기로 활용되거나 대외적으로 동반성장 홍보 도구로 전락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급제도는 원자재 가격 변동 위험에 따른 협력사 위험을 상쇄한다는 게 당초 취지다. 대기업들의 설명에 따르면 협력사 입장에서는 원자재 구입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해지기 때문에 원자재 가격 등락에 따른 경영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또 대기업 협력사들은 동일한 경쟁 기반에서 사업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대기업이 일괄 구매하면 두 업체가 동일한 가격에 원·부자재를 구매할 수 있어 경쟁 조건이 비슷해진다. 즉 아주 영세한 협력사들에는 사급제도가 기회 요인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사급제는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내 일부 대기업과 협력업체 사이에서 기형적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카메라모듈 업계는 일찍이 원·부자재 사급제도가 시행돼 왔다. 카메라모듈 제조에 쓰이는 자동초점(AF) 액추에이터, 렌즈 등 핵심 부자재는 일본 기업들이 주로 제조하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이 비싸게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2000년 중반부터 대기업들이 핵심 부자재를 구매해 사급함으로써 각 업체들은 원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실제로 제조 원가 중 재료비 비중이 대폭 낮아졌다.

 그러나 원가 절감과 동시에 일부 대기업들은 분기당 5% 수준의 강력한 판가인하 정책을 카메라모듈 협력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대기업들이 사급제도로 원가구조를 속속들이 알게 돼 판가인하 압박용으로 활용한 것이다.

 한 중소기업 CEO는 “사급제 결과에 따른 원가절감 혜택을 중소기업에도 나눠줘야 한다”며 “중소기업 수익이 개선되면 연구개발에 재투자 여력도 생겨 국내 IT 경쟁력도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백라이트유닛(BLU) 업계도 마찬가지다. 국내 대부분 BLU 제조 업체들은 프리즘필름, 반사필름 등을 대기업으로부터 유상사급 형태로 공급받고 있다. 핵심 소재를 사급받게 되면서 BLU 업체들은 원가 관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 힘든 구조다. 사급제도에 따른 원가 절감 노력의 혜택이 모두 대기업들에 돌아간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재무 문제도 골칫거리다. 사급제도로 협력사들은 임가공비와 일부 부자재 매입만 담당하기 때문에 매출 규모가 너무 작아져 회사가 시장에서 과소평가되는 문제점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사급제도에 따라 원가 절감이 진행되어도 대기업들이 과실을 모두 가져간다면 동반성장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다”면서 “협력사에 적정수준의 이익을 보장해 기술 개발에 투자하게 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케 하는 애플·노키아 등 글로벌 업체들을 국내 대기업들이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형수·안석현기자 goldlion2@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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