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R&D) 투자의 성공이 나라와 국민의 풍요로운 삶을 결정하는 시대입니다.”
서영주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장(59)은 R&D가 경제적 부가가치이자 더 나아가 국부를 창출하는 ‘R&D노믹스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고 첫 말을 꺼냈다. R&D 투자의 성공 여부가 나라와 국민이 지속적인 풍요를 누릴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 서 원장은 따라서 “정부 R&D 투자가 목적부터 경제 성장을 견인할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은 새해 한해 정부 산업기술 R&D 사업 예산 2조원을 위탁 관리한다. 관리원의 수장인 서 원장은 새해 목표로 ‘투자의 집중과 선택’과 ‘조직의 전문화’ ‘스마트융합’ 등을 꼽았다.
KEIT의 예산은 지식경제부의 산업기술 R&D 투자금액 4조 5000억원의 절반에 이른다. 정부는 지난 2000년 이후 국가 전체 R&D 예산을 해마다 10% 증액해 올해는 14조9000억원을 배정했다.
“적잖은 금액이지만 미국이 R&D에 투입하는 금액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입니다. 일본에 비해도 3분의 1에 불과합니다. 경쟁국에 비해 적은 예산으로 이들과 대등하거나 나은 성과를 거두려면 선택과 집중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정부 투자를 위임하는 KEIT의 역할이 점차 중요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 원장은 올해 KEIT의 자체 전문성 강화도 주요 과제라고 밝혔다.
그는 “KEIT가 인베스터(투자전문가)로서 이제 단순히 R&D 지원금을 배분·관리하는 기능에서 한 발 나아가 R&D 현장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기술의 미래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고 잠재력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국민이 낸 세금을 더 크게 불려 국민에게 되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경쟁과 융합도 R&D노믹스 시대에 필요한 것으로 꼽았다. 세계 각국이 기술을 무기로 무한경쟁을 펼치는 데 여기서 살아 남으려면 경쟁력이 있어야 하고 그 밑거름이 융합이자 대중소·중견기업의 동반성장이란 논리다.
서 원장은 “KEIT는‘비빔밥’을 만들듯 원천기술이 부족한 제조업에 정보기술(IT)과 바이오기술(BT), 나노기술(NT) 등을 융합해 스마트한 융합 기술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산업기술 R&D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KEIT가 거둔 성과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지난해 3월 ‘지식경제 R&D 혁신전략’을 발표하면서 R&D 지원체계가 시장 친화적이고 성과중심으로 경쟁시스템으로 전환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경쟁기획과 중간탈락(Early Exit) 확대 도입입니다.
모두 R&D 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또 투명성 제고를 위해 실시간통합연구비관리시스템(RCMS)이 구축돼 단계적인 시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도가 정착되면 국가 R&D의 경쟁력과 투명성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대형 신규사업을 추진하면서 집중력이 높아지고 관리를 단순화한 것도 달라진 점입니다. 세계 시장 선점 10대 핵심소재(WPM) 사업, 월드베스트소프트웨어(WBS) 사업 등 대형 신규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면서 산업기술 R&D 과제 기획·평가·관리 전담기관으로서 위상도 높아졌습니다.
-올해도 R&D의 경쟁력과 투명성 강화를 위한 조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아는데요.
▲R&D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지난해 상대평가를 해 하위 10%인 17개 과제가 중간 탈락했습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는 13개 과제인 15%가 중도에 종료됐습니다. 올해도 경쟁 촉진을 위해 단계마다 상대평가가 이뤄져 하위 10∼20%의 과제가 중단됩니다. 중간 탈락제도는 연구수행기관 입장에서는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경쟁을 통해 우수 성과에 대해서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미국에서도 과제가 완료되는 비율은 68%에 그치고 있고 실제 혁신적인 성과는 이 가운데 약 1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선 현재 우수제조기술연구센터(ATC) 사업 등 9개 사업에 시험적용 중인 RCMS가 전 사업으로 확대 적용됩니다.
또 산업기술진흥원(KIAT)·에너지기술평가원(KETEP)·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도 시스템을 적용할 예정입니다. 또 RCMS과 연구기관의 과제관리 및 회계 시스템과의 연계 작업도 추진합니다.
-새해 R&D의 선택과 집중을 강조했는데 올해 대형 프로젝트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올해 대표적인 사업이 ‘100대 전략제품 기술 중심 과제’ 사업입니다. 지난해 10년간 정부 R&D 자금 1조원을 투입하는 WPM 사업 같은 대형 과제입니다. 신성장동력·녹색성장 등 다양한 정부 산업육성 정책을 종합 분석해 향후 반드시 확보해야 할 ‘100대 전략 제품 기술’로 발굴해 선정하는 것입니다. 연평균 성장률이 10% 이상이 예상되는 전략 제품의 핵심기술 가운데 선정해 과제당 최소 3년에서 최대 7년간 연간 100억원이 지원됩니다. 100대 전략 기술은 기술 단위가 아닌 제품 중심의 기술이어서 기술 개발 후 사업화로의 연계가 쉽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대형 과제 위주로 R&D가 진행되면 중소기업이 소외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해 과제당 10년간 10개 과제에 1000억원이 지원되는 WPM 사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과제에는 총 152개 기업과 100개 대학·연구소 등 252개 산학연 컨소시엄이 참여합니다. 대기업이 수요기업이 되기도 하고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이 참여해 부품과 완제품의 국산화하고 무역수지를 개선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공공기관과 대기업이 필요한 신기술이나 신제품을 중소기업이 개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고 개발에 성공하면 수요처가 구매해주는 ‘구매조건부 신제품 개발사업’도 추진됩니다.
-개방형 혁신이 올해 주요 화두입니다. 글로벌 공동 R&D 추진을 위한 복안이 있으신지요.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KEIT가 관리하는 지경부 R&D 사업 가운데 해외 기관의 참여와 직접 관련이 있는 과제는 총 94건, 이 중 해외 연구기관·기업에 지급한 금액은 408억원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지원은 더욱 확대될 예정입니다. 산업융합원천기술개발 사업뿐만 아니라 WPM 사업, 올해 신설한 글로벌 전문기술 개발사업 등에서 해외 연구기관·기업 등과의 국제 공동 기술 개발이 활성화되도록 ‘개방형 혁신’을 확대할 것입니다. 실제 올해 독일의 MGF, 영국의 MEL과 SRI, 미국의 다우코닝, 일본의 도쿄대 등이 개방형 혁신을 위해 공동연구 추진을 제안해오고 있어 향후 해외 R&D 자원과 아이디어를 적극 도입해 활용할 예정입니다.
-중소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계획도 있나요.
▲대다수 중소기업은 기술·생산성 등에서 제품 경쟁력이 낮고 대기업 중심의 수직계열화된 납품구조에 있습니다. 기술과 제품 경쟁력을 갖춘 기업조차도 해외 마케팅, 수출 금융, 무역인력 등 자체 해외 진출 인프라가 취약합니다. 따라서 수입대체나 수출 유망한 전략품목 유망기업을 선별해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전용 R&D 프로그램이 마련됩니다. 가능성이 높은 중소기업에 대해 320억원 규모의 개발과제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업체당 최대 2년간 8억원이 지원됩니다.
◆KEIT, 세계 최고 R&D 인베스터 목표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은 새해 세계 최고 수준의 R&D 인베스터로 발돋움한다는 목표다.
앞으로 KEIT를 미국의 국립기술표준원(NIST)이나 국립연구재단(NSF), 항공우주국(NASA), 일본의 신에너지산업기술개발기구(NEDO) 같은 세계 유수 R&D 기획평가기관 못지않게 키워나간다는 게 서 원장의 목표다.
‘KEIT 하나로, KEIT 세계로, KEIT 미래로’란 구호에서도 볼 수 있듯 현재에 머물지 않고 세계와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KEIT는 이를 위해 올해 조직의 전문성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성과연봉제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통해 조직이 산업기술 평가·관리 전담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판단에서다. 우선 전문성 강화 차원에서 도입한 후보과제우선순위평가방법론(NEPSA), 기술성숙도 등 선진 평가기법을 우리 현실에 맞게 다듬어 활용키로 했다.
직원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분위기도 조성한다. 직원 간 자율 지식 학습 동아리 체제를 강화하고 국제협력 전문가 프로그램, 직무 분석을 통한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개발키로 했다. 시스템 측면에선 전사전 자원관리시스템(ERP) 구축을 위한 정보 전략도 추진한다.
이달 공청회를 거쳐 2단계 R&D 프로세스 혁신도 추진한다. R&D 노믹스란 혁신 철학에 걸맞게 R&D 프로세스 전주기에 걸쳐 도전적 목표를 ‘설정→유지→달성’ 구조를 설계, 성과 지향이 높은 R&D를 추구하는 것이다. 아울러 대·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수요연계형, 부품-완제품 협력형 등 다양한 R&D를 기획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관련 규정과 제도가 정비되면 3월부터 시행이 가능해진다. 또 중소기업과 대학·연구소 등의 정부 R&D 과제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별도 R&D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고객 중심 기관으로 자리매김한다는 방침이다.
◆서영주 원장은
서영주 원장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77년 행시 20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대통령 비서실 경제구조조정기획단 국장, 중소기업청 벤처기업국장·정책국장, 산업자원부 무역유통국장,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정책조정실장 등을 거치며 줄곧 산업과 중소기업 진흥 정책을 주도해 왔다.
2007년에는 전자부품연구원장을 지내며 우리나라 부품 산업의 체계를 갖추는 데 일조했다. .
6개 기관이 통합해 출범한 KEIT의 수장으로 오면서 새로운 기관이 기획·평가·관리를 일원화하는 전문조직으로 자리잡는 데도 서 원장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지난해까지 R&D의 투명성과 과제간 경쟁 도입에 적극적인 입장을 피력해왔다. 이를 통해 국민이 낸 세금을 더 크게 불려 국민에게 되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서 원장은 “성공한 R&D 투자는 국가경제에 기여할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 국격을 높이고 국민 삶의 질을 제고하며 일자리를 만드는 등 가치가 막대하다”며 “그 혜택의 최종 수혜자인 국민의 관심과 격려가 R&D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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