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나이 예순 다섯.
미끄러지듯 기품 있고 중후하게 움직이는 빛나는 검은색 세단에서 몸을 일으킬 법도 한데 그는 일반인 예상을 보기 좋게 깨버렸다.
형사 콜롬보, 맥가이버, 가제트 형사, 아마데우스 등 유명 외화 시리즈에서 목소리로 열연한 `국민성우` 배한성 씨가 포즈를 취한 차는 BMW의 가장 작은 차, 미니 쿠퍼 S 컨버터블이다. 게다가 색깔도 짙은 오렌지빛.
그는 사람들이 나잇값 못한다고 해도 좋아하는 차만은 포기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정식 수입되기 전부터 미니를 갖고 싶어 병행수입을 통해 결국 손에 넣었죠. 아마 제가 한국에서 여섯 번째인지 일곱 번째 오너가 됐다죠. 길에 차만 세웠다 하면 아이들이 구경하려고 달라붙고, 어떤 사람은 와이퍼에 명함을 꽂아놓고 가기도 했어요. 자기도 사고 싶으니 연락 좀 달라고 말이죠."
그는 덩치 크고 기름 많이 먹는 세단형보다 작고 강한 차를 좋아한다고 했다. 지금은 미니에 이어 BMW 1시리즈를 몰고 있다.
이제까지 그를 거쳐간 차들 면면을 봐도 티코에서부터 알파로메오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평범한 차가 없다. 그는 심지어 92년 티코를 타고 53일 동안 2만㎞에 달하는 유라시아 대륙 횡단길에 오르기도 했다.
"차만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어디 또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그는 이른바 `플러스 알파(+α) 소비자`다. 현대자동차그룹 광고 계열사인 이노션이 지난 1~3년 사이 차를 새로 장만한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자동차 구매 심리 조사를 해봤더니 독특한 부류가 `발견`됐다.
전체 중 약 17.2%로 추정되는 이들은 자동차 선택 기준 중 실용성이나 브랜드 신뢰성, 성능 대신 `자아 표현성`과 `희소성`을 더 중요시했다.
감성적인 디자인이나 특이한 무언가에 특히 열광했다. `자동차는 네 바퀴 달리고 굴러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운송수단파(13.6%)`와 대척점에 있는 이들이다. 이노션은 이들에게 `개성파(+α 드라이버)`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노션 측은 "워낙 마니아가 많은 자동차 시장에서 플러스 알파 소비자들이 실존하는지를 증명하는 게 이번 심층조사를 실시한 주요 목적이었다"면서 "이들에게 자동차는 타는 것이 아니라 패션처럼 입는 것이다 보니, 이들은 단순 운전자가 아니라 자동차 시장에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내는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자동차만을 유일한 구매 대상 품목으로 놓고 소비자 성향 조사를 벌인 것은 국내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자동차는 물ㆍ휴지 등 생필품이나 음료ㆍ담배 같은 기호식품, 휴대폰ㆍ컴퓨터 같은 고가 전자기기에 이르기까지 여타 품목을 총망라해 가장 비싼 소비재다. 게다가 제품 교체주기도 4~5년으로 길고 교체에 따르는 거래비용도 크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가장 신중하게 선택하는 품목으로 손꼽힌다.
그런 자동차 소비자 중 특이한 집단으로 구분된 이들에게선 7가지 특별한 소비 코드가 발견됐다.
일단 `디자인 퍼스트`. 무엇보다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예쁜 차를 타면 내가 좀 더 당당하게 보일 것 같다"(24세 대학생)거나 "보통 물건을 사도 딱 봐서 보기 좋은 걸 사지 밋밋한 건 사지 않는다"(32세 회사원)는 대답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들은 나머지 82.8% 소비자들보다 디자인에 더 가치를 뒀다. `성능보다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항목에 +α들은 34.9%가 `그렇다`고, 나머지는 22.5%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또 이들은 `흔하지 않은 특별함(rare premium)`에도 강한 집착을 보였다. `늘 보던 차보다는 희소한 브랜드에 끌린다`에 80.2%가 `그렇다`, `아무나 모는 차가 아닌 나만의 차를 갖고 싶다`에 무려 89.5%가 `그렇다`고 답해 나머지가 이들 항목에 30%대 긍정에 그친 데 비해 가장 큰 격차를 보였다.
배한성 씨가 한국에서 판매되지도 않던 차를 어렵게 구해 타는 정성을 보인 것도 특별함을 갈구하는 성향 때문이고 보면, 그는 영락없는 +α족이다.
이 밖에 자동차를 소비할 때 `자신만의 개성 표현`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거나 `새로운 기술과 문화에 대한 높은 수용성` `현재 욕구에 충실한 소비` `한 번 만족한 브랜드에 대한 강한 충성도` 성향 등이 발견됐다.
언뜻 이와 같은 특징을 지닌 개성파 소비자들은 젊고, 소득이 많으며, 평범하지 않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류일 것 같지만 조사 결과는 딴판이었다.
성별로는 여성 응답자 중 21%, 남성 중 14.7%가 개성파로 분류됐다. 평균 대비 여성이 좀 더 많지만 크게 벗어나는 수치는 아니다.
연령대별로도 25~29세 17%, 30~39세 16.6%, 40~49세 18.8%, 50~59세 14.6% 비율로 나타나 전 연령대에 걸쳐 고르게 분포하고 있었다. 이런 점을 간파해 기아차는 최초 박스형 CUV인 쏘울을 출시하면서 `영혼에는 나이가 없다. 멋진 차를 위한 나이도 없다`는 광고 카피로 젊은 감각을 표현하고픈 장년층의 잠재 욕구를 겨냥했다.
월소득 550만원이 넘는 고소득층에서 개성파 자동차 소비자는 16% 정도로 집계됐고 400만~550만원 미만에서 17.6%, 400만원 미만 구간에서도 18.0%였다. 나머지 소득구간에서도 마찬가지. 소득에 상관없이 욕망과 끼를 표현하려는 이들이 고루 분포하고 있는 셈이다.
박재항 이노션 마케팅본부 이사는 "개성파 소비자들이 돈 많은 전문직 젊은 층일 것이라는 가정은 전통적 마케팅의 고정관념에 불과했다"며 "이들은 단지 비싸기만 한 차가 아니라 `합리적 가격대 명품(affordable luxury)`을 원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기아차 쏘울과 곧 나올 현대차 벨로스터처럼 평범한 세단이길 거부하는 차를 개성파의 타깃으로 지목했다. 그는 "문짝이 좌우 비대칭인 벨로스터는 특히 개성파 소비자 이목을 끌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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