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 기업들의 기술 수준이 평준화되면서 디자인이 제품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현대 소비자가 제품을 고를 때 기술의 첨단성이나 사용의 편리성만이 아니라 디자인의 우수성을 고려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조사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우리나라 디자인 경쟁력 성장세도 가파르다. 핀란드 헬싱키대 디자인연구소(디자이니엄·Designium)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디자인 경쟁력은 2002년 세계 25위에서 2005년 14위로, 2007년엔 9위로 뛰어올랐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기업의 투자 확대, 풍부한 디자인 인력 등이 맞물린 결과다. 하지만 산업 구조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국내 대다수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과 달리 인건비 부담 등으로 디자이너조차 채용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럴 때 대신 디자인 개발·조사·분석·자문 등을 해주는 곳이 ‘산업디자인전문회사’인데, 이런 회사들도 영세하긴 마찬가지다. 2008년 기준 현황에 따르면 국내 디자인전문회사 2500여곳의 업체당 평균 매출액은 6억5100만원에 불과하고, 평균 고용인원도 4.8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들 전문업체가 역량 부족으로 변화에 뒤처지고 있다는 건 더 큰 문제다. 선진국 디자인전문회사가 제품 기획부터 디자인 개발, 제품 생산 및 유통까지 모든 제조 과정에 관여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은 이에 발맞춘 덕분이다. 국내 디자인전문회사들은 아직 단가 경쟁이 치열한 스타일 중심 디자인 개발 용역 수주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선진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건 아니다. 기존 디자인 용역을 수행하면서 차근차근 ‘토털(total)’ 디자인전문회사로서의 역량을 쌓아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기업의 디자인 용역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자체 제품을 디자인해 유통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수익성 제고를 위해선 용역 대금을 로열티를 받는 것도 한 방법이고, 자신의 디자인에 이름을 새겨 수익을 얻는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의 ‘디자인실명제’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때마침 지난해 정부가 일반 산업기술 R&D에서도 디자인 정보조사와 디자인 개발, 디자인 컨설팅 등에 들어간 비용의 계상이 가능토록 ‘지식경제 기술혁신사업 운영요령’을 개정한 것도 디자인전문회사엔 좋은 기회다. 차제에 디자인 개발 사업 외에 일반 R&D 사업에도 적극 참여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 디자이너의 우수한 역량은 정평이 나 있다. 폭넓은 국내 제조업 기반도 좋은 조건이다. 그런데도 국내 디자인전문회사의 매출은 여전히 기대 이하다. 디자인 선진국인 영국의 전문회사의 매출은 국내 업체의 7배에 달한다. 더욱이 원가 경쟁력으로 우리 시장을 잠식 중인 중국 제품이 디자인 개발에서도 우리 제품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마중물’ 지원이 시급하고 절실한 이유다.
정부도 올해부터 유망 디자인전문회사를 선정해 본격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국내 전문업체들이 그간 힘겨워했던 디자인 컨설팅 역량 제고와 자체 제품 디자인 개발, 국내외 네트워크 구축 및 공동연구, 글로벌 전문인력 양성 등에 힘을 보태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디자인전문회사의 자구노력이 필수인 것은 물론이다. 협소한 국내 디자인 시장을 벗어나 세계 시장에 진출하려는 도전정신을 가져야 한다. 한국 디자인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국가 경제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글로벌 디자인전문회사가 머잖아 우리나라에서도 탄생할 것으로 기대한다.
김홍연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신산업평가단장 hykim@kei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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