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 객원논설위원·한국외국어대 글로벌경영대학 교수(jhl1019@hanmail.net)
배우고 익힘에는 끝이 없다. 20년 학교 다닌 결과로 박사학위를 받은 지 30년, 난 아직도 심오한 학문의 이치를 깨우치는 중이다. 진리탐구는 아무도 모르는 미래를 미리 알아내는 작업처럼 어렵기만 하다.
언젠가 광활한 학문의 세계를 종이에 그려본 적이 있다. 자연의 법칙을 밝히는 과학과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예술을 양극에 두고, 그 선상에 다른 모든 학문들을 배열시켜 본 것이다. 한쪽 끝엔 수학과 물리·생물·화학 등 자연과학, 그 옆엔 기계·전자 등 공학계열 및 의학·농수산·해양계열을 차례로 위치시켰다. 반대로, 미술·음악 등 예체능 계열방향엔 윤리·인류·철학 등의 인문학과 어문학을 넣고, 덧붙여 정치·심리·법학 등의 사회과학과 교육학계열을 자리 잡게 했다. 그림 중앙에 경제·경영 등을 삽입하니 나름 그럴듯하긴 했다.
그런데 난망한 것이 IT학의 위치였다. IT는 소프트웨어과학이자 콘텐츠문화예술이며, 컴퓨터공학이면서도 디지털경영학이고, 사이버사회학임과 동시에 뉴미디어언론학 겸 문헌정보학이며, 또한 교육공학이자 인공심리학 등으로 전 학문적으로 넓게 포진되는 것 아닌가. IT는 기존학문의 경계를 초월하는 게 분명했다.
한편 과학과 예술이 굳이 학문의 양극은 아닌 듯 싶었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화가이자 과학자였다. 히틀러는 원래 화가를 꿈꿨다지 않은가. 도올 김용옥은 수학을 강조하는 철학자이고, 시인 김지하는 생명운동가로 변신했단 말이다. 작곡가가 된 MIT 전자공학박사 친구도 생각났다. 혹시 극과 극은 통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그림의 양끝을 연결시켜보니 IT영역도 동그랗게 그려졌다. IT는 다름 아닌 융합학문인 것이다.
IT만이 아니다. 요즘 내 관심사인 미래학 역시 알고 보니 인지과학, 진화심리학, 문화인류학, 정치경제학 등을 망라한다. 최근 미래학의 주류로 각광받고 있는 NBIC(Nano·Bio·Info·Cogno) 논리도 같은 시각이다. 원자·세포·비트·뉴런은 인공지능의 미래를 뜻하기도 한다. 커즈웨일의 ‘싱귤레리티’ 이론은 학문과 기술의 빅뱅으로 인간과 기계, 현실과 가상현실과의 경계가 곧 사라지리라고 전망한다. ‘지구를 물려받을 미래의 로봇은 바로 우리 인간이리라’는 민스키 교수의 논리는 어찌 이해할까.
물론 IT가 변화시킬 미래가 궁금하다. 그러나 미래학도 IT학과 마찬가지로 융합학문이니, 미래에 관심 갖는 IT학자로서의 난 깨우칠 게 너무 많아 더욱 더 힘들 뿐이다.
각설하고, 새해다. 그리고 방학이다. 방학은 교수의 특권이다. 재작년 겨울 한 달은 수필집에 매달렸었던가. 이번 겨울도 학문은 잠시 미루고 화가친구와 스케치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과학과 예술을 넘나드는 학자가 되고파서라면 게으른 교수의 변명이라고 비웃을까.
근데 출발 전, 청와대 IT특보가 부탁한 미래연구에 대한 이번 주 주제발표는 어찌 준비한담. 미래는 정말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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