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이 콘퍼런스에 다녀오거나 학계 지인을 만난 후 며칠은 피곤할 각오를 해야 한다. 초청받은 외국학자의 경구를 인용해가며 핏대를 세울 테니 말이다. 통조림처럼 싱싱하지 않은 이론을 들먹이며 일장연설을 늘어놓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떠들어봐야 열흘짜리인지 1년짜리인지만 다를 뿐 언젠가는 끝난다. 먹은 짬밥이 얼마고 구른 세월이 얼마인가. 최신식 유행 패션을 입건 고가의 클래식 정장을 입건 주인공이 구식이면 다 구식이다. 조금만 참고 있으면 슬로건만 바뀔 뿐 핵심 내용은 그대로일 게 뻔하다.
개가 사람을 물면 신문에 안난다. 사람이 개를 물어야 신문에 난다. 냉장고 없는 집에 냉장고를 파는 것은 당연하다. 에스키모에게 냉장고를 팔아야 박수를 받는다. 여건 되면 열심히 하겠다는 것은 당연하다. 여건이 안 되지만 열심히 해서 여건을 좋게 만들어야 실력이다. 여건 돼서 하면 그건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여건이 하는 거다. 비아냥과 냉소는 어쩌면 회사를 다니면서 유일한 해방구일지 모른다. ‘나 여기 있소’라고 저항하는 소심한 절규일지 모른다. 하지만 비아냥과 냉소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희망의 언어로 ‘비전’을 그리고,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어야 뿌옇게라도 미래가 보인다. 아니면 우리 모두 냉랭한 까칠함 속에 함께 침몰할 뿐이다. 겪을 대로 겪고 실망할 대로 실망한 나를 추스리고 다시 일으켜 세우자. 정 마음이 안 내키고 지긋지긋하거든 과감히 사표를 쓰자. 뻔한 회사, 비웃으며 빌붙어있는 것도 비웃음 당할 일이다. 레시피대로 요리한다고 맛있는 음식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이론대로 한다고 모두 성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과 이론이 있어야 응용도 하는 거다. 정독하고 헤아리며 우리 업무환경에서는 어떻게 달리 활용해야 하는지를 고민하자. 그것이 우리의 몫이다. 대책 없이 반항하고 근거 없이 비판하지 말자. 그것은 서로를 멸망의 길로 이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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