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해봐’라고 지나가듯 말해놓고 아직 안됬냐고 닥달이다. 하라는 대로 했건만 고작 이거냐며 추가하라는 목차가 열줄이다. “그냥 두고 갚라는 다섯글자가 풀어야 할 암호같고 “알아서 해”라는 네글자는 번역해야 할 모리스 부호같다. 모나리자에겐 웃는 건지 슬픈 건지 묻고 싶고, 상사에겐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묻고 싶다. 스무고개 퀴즈처럼 알쏭달쏭한 상사의 지시들, 머리를 쥐어뜯고 손톱을 물어뜯게 만든다.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게 편리하고 매력적이다.
거기에는 깊고 섬세한 사색의 귀찮음이 끼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복잡하고 모순적이어서 그렇게 단순명쾌해질수 없다. 얼른 포기하고 말보다 마음을 헤아리자. 들리는 소리만 듣지 말고 언어의 이면에 표현된 의미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듣는다는 것은 단어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과 상황, 앞뒤 맥락까지를 포함한다. 상사가 ‘그만 됬네’라고 말했지만 마무리까지 챙겨야 할지도 모르고, 상사가 ‘내가 해야지’라고 말했어도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만 일어서야 하고, 그만 포기하자고 했지만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는 심부름꾼이 아니라 시키는 것 이상으로 하는 전문가다. 상사 밑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상사를 사용하여 내 실력을 발현하는 중이다. 앞뒤 상황을 재고 좌우 분위기를 살피자. 넌지시 물어보고 중간 보고 후 반응을 관찰하자.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얼지, 이걸 어디에 사용할 건지, 이 결과가 상사에게 끼칠 영향은 무얼지 헤아리자. 외국어를 해석하듯 상사의 말을 듣고 시를 음미하듯 상사의 마음을 상상하자. 상사의 말은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뒤집어보고 조각 맞추기하듯 끼워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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