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울산에서 유사석유를 제조해오던 일당 9명이 경찰에 검거됐다. 지난 2월부터 65억원어치의 유사석유를 판매해온 혐의다. 지난달에는 대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수원에서는 유사석유를 판매하던 주유소가 적발돼 4개월 사업 정지 처분을 받았다.
어느 새 유사석유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왔다. 외곽지역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던 불량제품이 아니라 주유소에서 일반 석유와 같이 팔리고 있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더 큰 문제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정부와 한국석유관리원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유사석유의 뿌리가 깊다. 유사석유 제조 기술과 판매방법도 점차 지능화돼 간다. 단속 능력과 범죄 수법 모두 진화돼 가고 있는 것이다.
간혹 차를 타고 가다보면 외곽 지역에 유사석유를 판매하는 곳이 종종 눈에 띈다. 관광버스나 건설용 기기들이 경유 대신 보일러 등유를 넣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유사석유 제품이란 세금탈루를 하기 위해 임의로 정상석유 제품과 유사하게 제조하는 걸 일컫는다. 조연제와 첨가제 등을 섞어 차량이나 기계 연료로 사용하거나 사용할 목적으로 제조된 것을 총칭한다.
길거리에서 판매되는 유사휘발유는 완제품 형태로 용제와 톨루엔·메탄올을 섞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주유소에서는 100% 면세가 되는 용제와 톨루엔 등을 휘발유와 혼합하거나 휘발유를 가장해서 판매한다.
◇유사석유, 세금탈루만 1조원 넘어=유사석유 제조 및 판매업자가 생겨나는 이유는 결국 돈이다. 저가의 석유제품을 섞는 만큼의 이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석유관리원에 따르면 휘발유 가격을 리터당 1637원으로 가정할 경우 유사휘발유 매매 시 공급자는 리터당 370원의 마진을 얻고 소비자는 387원 가량 싸게 살 수 있다. 이로 인한 연간 탈세액만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추정하고 있다.
또 계속되는 고유가와 석유제품에 부과되는 고율의 세금도 유사석유 소비를 조장하는 이유가 된다. 결국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공급자와 값싼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처벌도 미약하다. 평균 하루에 30통을 팔면 월 600만원 정도의 부당 이득을 챙기지만 적발되면 100만원~200만원의 벌금만 내면 된다. 판매업소의 재영업이 반복되는 이유다.
제조방법이 단순하고 쉽다는 것도 유사석유 유통량을 늘리는 이유 중 하나다. 용제에 톨루엔을 섞는 등 석유제품에 석유화학제품을 혼합하거나 경유에 가격이 싼 등유를 넣는 방식이다.
◇유사석유의 폐해=가장 큰 문제는 유사석유를 사용하면서 자동차의 수명이 짧아지고 연비나 출력이 감소된다는 것이다. 자동차 엔진 부품 부식으로 수명이 짧아지고 불순물로 연료 계통과 인젝터 등에 손상을 입게 된다. 이에 따라 차량이 갑자기 정지하거나 화재·폭발 등의 대형사고도 상존한다. 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유사휘발유를 사용할 경우 실주행연비가 약 18%나 감소하고 유사경유도 최대 5% 줄어든다.
특히 유사휘발유는 인체에 치명적인 톨루엔과 메탄올을 다량 함유해 현기증이나 마비·구토 등을 야기한다. 알코올을 함유한 유사휘발유는 정품에 비해 알데히드가 약 62% 많고 배출가스는 일산화탄소 2.5배, 벤젠 5배, 톨루엔은 12배다.
용제가 섞인 유사경유도 총 탄화수소가 최대 36% 늘어나고 일산화탄소와 입자상 물질의 농도가 각각 최대 약 35%와 6% 증가한다.
◇진화하는 유사석유=유사석유는 단속이 강화됨에 따라 제조 기술이나 판매방식이 점점 지능화돼 간다. 잡기도 어려울뿐더러 유사석유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도주할 경우를 대비해 노상에서 봉고차나 탑차에서 영업을 하는 건 예사다. 가정집을 위장하고 창고를 개조, 차단막을 설치한 사례도 있다.
최근에는 이동식 유사석유 제조장도 등장했다. 탱크로리 내부를 개조해 마치 주유소에서 등유를 공급하는 것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등유를 탱크 내부로 빨아들여 혼합한 후 경유 저장고로 넣는 수법이다.
검사방법이 고도화 될수록 제조방법도 점차 지능화돼 간다. 기존에는 유사석유의 색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에 유사석유 제조 시 색깔을 맞추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최근 주류를 이루는 유사경유의 사례를 보면 붉은 색의 등유를 섞을 때 이를 제거, 육안으로 구분이 힘들다. 석유관리원에서 다시 시약을 넣어 판별하는 방법을 개발하자 이젠 시약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기술까지 등장했다.
유사석유 제조범들은 이를 위해 석유화학 분야를 전공한 전문가들도 영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사석유제품 판매자 사이에 연합회를 구성해 월 회비를 보험형태로 사용, 단속 벌금을 납부하기도 한다.
판매수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기존 판매 장소를 위장하거나 전화·인터넷 등으로 배달 판매하는 건 이미 옛 일이다. 기존 주유소에서 대놓고 판매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방법은 간단하다. 스위치나 리모컨 조작으로 유사석유를 주입하는 식이다. 발밑에 스위치를 설치하거나 주머니 안에 리모컨을 갖고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최근에는 모니터를 이용, 단골인 경우 유사석유를 넣어주고 처음 오는 차량은 검사원 차량으로 의심, 정상 석유를 주입키도 한다. 단골이 되레 피해를 보게 되는 경우다.
뿐만 아니라 인근 폭력조직이 대규모 자금을 동원해 개입하면서 범죄가 조직화돼 가고 있다. 기존 주유소를 임대한 후 유사석유를 직접 제조, 판매해서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다. 물론 처음엔 저렴한 가격에 정상 석유를 팔고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유사석유로 전환한다.
석유관리원은 이에 대해 검사를 강화하고는 있지만 법적으로 강제가 되지 않아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전국 상표 표시 주유소를 대상으로 우수 주유소를 선정하고 비상표 표시 주유소에 대해서는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유창선기자 yuda@etnews.co.kr
<표>유사휘발유 제조유형
<표>유사경유 제조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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