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은 미래에 미국 항공모함 위 소방작업은 군인이 아니라 휴머노이드가 하고 있을 겁니다."
미국 휴머노이드 연구개발 분야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재미(在美) 한국인 과학자 데니스 홍 버지니아공대 교수는 최근 미 해군에서 3년 3000만달러 규모의 소방작업용 휴머노이드 프로젝트를 맡았다. 프로젝트 결과가 성공적이면 이후 더 많은 연구자금을 지원받게 된다.
이는 휴머노이드 연구개발 경쟁에서 잠자고 있던 로봇 강국 미국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로써 미래 휴머노이드 시장을 놓고 한국, 일본, 미국이 기술경쟁 삼파전을 벌이게 됐다.
일본의 혼다 `아시모`, 도요타 `파트너`와 한국의 KAIST `휴보`, KIST `마루`가 경쟁하는 구도에서 올해 데니스 홍 교수가 미국 최초로 개발한 `찰리`가 가세한 것이다.
◆ 인간 닮은 휴머노이드, 가사용으로 딱=전통적으로 군사ㆍ산업ㆍ의료용 로봇 분야 강자였던 미국은 당장 상업화가 어려운 휴머노이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2006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미국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주도로 전 세계 로봇 연구개발 현황을 조사한 결과 미국이 한국, 일본에 비해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크게 뒤처져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휴머노이드 분야에 좀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특히 미국은 가사도우미로서 휴머노이드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가사도우미 로봇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데니스 홍 교수는 "집 안 문지방, 냉장고, 전화기 등 모든 것이 사람 기준으로 디자인됐는데 가사용 로봇이 사람을 닮지 않으면 활용이 어렵다"며 "가정용 로봇을 위해 별도의 냉장고, 전화, 세탁기를 만드는 것보다는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 개발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한국 KIST에서 가사용 휴머노이드 `마루`를 개발하고 있는 유범재 박사도 "사람들은 인간과 닮은 로봇이 자신을 위해 물을 떠주고 설거지를 해줄 때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며 "마루가 식탁 위 그릇들을 집어서 식기세척기에 넣은 다음 스위치를 눌러 설거지를 끝내도록 하는 게 당면 목표"라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휴머노이드를 가사용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20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휴머노이드에 적용되는 기술을 다른 분야에 적용함으로써 이익을 창출하려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데니스 홍 교수는 "휴머노이드 연구를 통해 인체의 움직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기계를 컨트롤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정교해질 경우 더 효과적인 의수ㆍ의족의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며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4년 일본 혼다가 개발한 `아시모`는 세계 최초로 시속 6~7㎞로 달리는 데 성공했다.
한국 KAIST의 `휴보2`는 5년 뒤인 2009년 아시모보다 느린 시속 3.6㎞로 달음박질할 수 있게 됐다. 혼다 `아시모`, 도요타 `파트너`에 이어 세계 3번째 성공이었다.
올해 처음 선보인 미국 버지니아공대의 `찰리`는 갓 걸음마를 시작한 수준이다. 걸을 때는 아시모, 휴보와 달리 휘청거리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데니스 홍 교수는 밝혔다.
한ㆍ미ㆍ일간 격차는 연구에 투입한 자금 규모의 차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아시모 개발비용이 수천억 원대일 것으로 추정한다. 반면 휴보에는 그보다 훨씬 못 미치는 40억원 정도의 개발비용이 들었다. 찰리에는 겨우 1억원 미만의 비용이 투입됐다.
한국도 일부 휴머노이드 연구 분야에서 일본을 앞지르는 성과를 내며 빠른 성장속도를 보이고 있다.
◆ 질주하는 일본, 쫓는 한국, 걸음마 뗀 미국=유범재 박사는 "인공지능, 컨트롤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기반 구조 등은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수준"이라며 "인간 동작을 실시간으로 따라하거나 보행할 때 단순히 이족보행이 아니고 전신제어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걷는 등의 기술은 한국이 오히려 앞서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과 달리 휴머노이드 기술 공개와 이전에 적극적인 전략을 취하는 것도 한국이 미래 휴머노이드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혼다는 아시모의 연구개발비조차 공개하지 않을 정도로 기술 공개와 이전을 꺼리고 있다. 반면 `휴보`를 개발한 오준호 KAIST 교수는 휴보의 기술 이전에 거리낌이 없다.
이는 적극적인 기술 공개와 이전을 통해 한국이 세계 휴머노이드 분야 표준화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은 현재 휴머노이드 기술이 가장 뒤처져 있지만 순식간에 일본과 한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데니스 홍 교수는 "미국은 휴머노이드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한국과 일본에 뒤져 있지만 자세제어, 균형유지, 알고리즘 등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오히려 앞서 있다"며 "이런 기술들이 바탕이 된다면 미국 휴머노이드가 미래에는 한국과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매일경제 김제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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