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야기] 30월 86일의 밤과 낮 사이를 체험하다, 연극 `고골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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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활보하나 인공적이며 비현실적이었던 넵스키 거리와 내면이 아닌 외형적 사물로서 정의되던 고골의 인물들을 시각화하는데 연극 `고골의 꿈`은 탁월하다. 돌출된 공간은 조롱당하는 인간의 쇼 무대가 되고 고골의 인물들은 그 위에서 가차 없는 풍자 대상으로 전락한다.

얼굴의 분칠과 기형적 동작, 과장된 말투,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자아도취적 성향 등으로 희화된 인물들은 고골의 세계를 체험하는데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하며, 처음으로 선보인 `넵스키 거리` 역시 고골의 환상공간의 문을 여는데 효과적이다. 영혼이 없는 유령들의 거리, 속물화되고 광대 같은 인간들은 `고골의 꿈`에서 이미지적 부활에 성공한다.

`2010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통해 소개된 `고골의 꿈(불가리아, 스푸마토 극단)`은 결혼과 실패라는 주제 하에 고골의 네 작품 `넵스키 거리`, `이반 표도로비치 슈폰카와 그의 이모`, `결혼`, `광인일기`로 구성됐다. 공연이 시작되면 똑같은 말과 제스처를 취하는 세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그들은 하나인 동시에 셋, 혹은 더 여럿으로 분열돼 있다. 이들의 입을 통해 재현되는 넵스키 거리는 인간성이 무시된 채 수염, 외투, 넥타이 등으로 계급이 나눠지며 거리를 활보한다.

넵스키 거리는 러시아의 수도 빼제르부르그에서 가장 활기찬 곳이다. 시간마다 거지, 가정교사, 관료 등이 쏟아져 나온다. 이들의 내레이션에 맞춰 패션쇼를 하듯 무대에 등장하는 거리의 인물들은 표정이 없고, 고귀한 옷과 잘 다듬어진 콧수염은 아무런 해석이나 설명 없이 놀림거리가 된다.

`넵스키 거리`는 젊은 화가 피스카료프의 일상공간(현실)과 꿈(환상)으로 구분된다. 한 눈에 매료된 여인을 따라가나 그곳이 사창가임을 깨달은 피스카료프는 충격을 받고 뛰쳐나온다.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뒤부터 꿈과 현실의 이동이 유연하게 이뤄진다. 꿈속에서 여인은 그가 원하는 순결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으며 가련한 젊은 화가는 실제로 그녀를 찾아가 청혼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녀는 주인공을 비웃고 결국 그는 자살을 한다.

고골은 종종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타락하고 음탕한 이중성의 불완전한 인격체로 그려냈다. 그에게 여성은 완벽하고 매혹적이나 두려운 존재다. 고골의 `결혼`을 각색한 스푸마토 극단의 `결혼`에서 `예쁜 여자`라고 묘사되는 여성은 전혀 예쁘지 않다. 오히려 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반 표도로비치 스폰카와 그의 이모`의 `바실리사 카쉬포로브나` 또한 한 번도 청혼을 받아보지 못했으며 사내보다 사내다운 여성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도 꿈은 현실보다 절대적으로 강하게 존재한다. 결혼을 강요당하는 이반 표도로비치는 꿈에서 거위의 얼굴을 하고 있는 `부인들`을 목격하게 되는데, 연극 `고골의 꿈`의 시각적 그로데스크는 목격되는 `부인들`의 표현에서 극대화된다.

스푸마토 극단의 `고골의 꿈`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관객의 기를 놀라운 속도로 흡입하는 것은 마지막에 선보인 `광인일기`다. 밝으면서도 불안한 노란 조명 아래서 파편화된 광인의 정신은 오감으로 전달된다. 동물세계와 사람세계의 구분이 모호해지며 좁지만 무한한 것을 담고 있는 무대장치의 활용도 배가 된다. 상세하게 드러나는 광인의 정신착란은 뒤틀린 사고와 언어로 현실을 엎어버린다. 고골 자신 혹은 인간에게 부여된 현실과 꿈, 욕망, 불완전함, 파괴성 등은 비현실적인 표현에도 불구, 치밀하며 진실된 비극적 심리아래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스푸마토 극단이 창조한 고골의 환상세계는 모두 고골의 자아인 동시에 관객의 내면과 동일하다. 극단적 삶의 한가운데서 좌절하고 절규하며 사랑과 결혼이라는 인간의 숙명적 함정에 두려움을 느끼는 연극의 인물들은 가장 잔인하게 까발려진다. 현실과 환상 모든 것을 획득한 동시에 광기와 위트로 고골의 위대함을 드러낸 연극 `고골의 꿈`은 그야말로 꿈의 세계를 체험토록 했다. 분절된 사고와 언어가 생명을 부여받는 순간, 우리의 무의식과 꿈이 무대 위에 재현되는 순간이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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