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G밸리 기업 1만개 돌파의 의미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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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시간의 서울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열차 문이 열리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20, 30대다. 이어지는 것은 비좁은 식당 골목. 젊은이들의 대행렬이 시작된다.

언덕 너머 도열한 아파트형 공장들이 그들의 일터다. 간밤의 소음과 냄새가 묻어나는 길이지만 그들 속에 묻혀 걷다 보면 기분이 좋다. 희망이 느껴진다. 청년실업이 심각하다는데 서울디지털단지의 아침은 젊음의 열기로 금새 더워진다.

한때 섬유 · 봉제 · 전자제품 수출로 이름을 날리던 구로공단. 1980년대 말에 큰 공장들이 떠나면서 위기를 맞았고 1990년대 말에 정부와 지자체가 힘을 합쳐 단지부활을 위한 플랜을 가동했다. 핵심은 규제완화와 인센티브였다.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하던 아파트형공장 건설을 민간기업에 허용하고, 제조업에 국한되던 단지 입주를 지식산업 · 정보통신 등으로 확대하였다. 아파트형 공장의 사업시행자와 입주기업에게는 파격적인 금융 · 세제 지원을 해주었다. 기업을 끌어들이는 데는 한국산업단지공단의 본사 빌딩도 한 몫 했다. 국내 최초의 벤처집적시설인 이 건물이 단지의 미래 모습을 보여주는 모델 하우스 역할을 했던 것이다.

드디어 2010년 7월. 서울디지털단지의 입주기업 수가 1만개를 넘어섰다. 단지 내아파트형 공장이 100여 개이니 공장마다 100여 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는 셈이다. 종사자 수는 13만 명에 달한다. 10년 전에 700여개 기업, 3만여 명에 불과했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증가세며, 도심에 그것도 수도 안에 1만개의 기업들이 클러스터를 이루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업종도 반도체, 통신 등 첨단제조업이나 소프트웨어, 게임, 애니메이션 등 지식서비스산업이 대부분이어서 기업들의 자부심도 대단하고 단지에 대한 애착도 크다. 아파트형 공장 별로 문화행사, 체육대회가 열리고 넥타이마라톤대회처럼 단지 전체가 참여하는 행사도 늘어나면서 서울디지털단지는 하나의 거대한 커뮤니티로 되고 있다.

문제는 교통난과 주차난이다. 녹지나 광장도 부족하고 호텔 · 전시장 같은 비즈니스지원 시설이나 문화 · 복지 시설도 거의 없다. 젊은이들이 즐길만한 공간이 없으니 밤만 되면 단지 전체가 썰렁해진다. 퇴근 시간이면 아침에 왔던 길을 되돌아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다.

서울디지털단지는 세계 최대의 도시형 산업집적지이다. 1980년대에는 도쿄의 오타구(大田區)가 1만여개의 중소기업들이 밀집하여 최대였으나, 수도권 분산 정책과 엔고 압력으로 기업들이 지방과 해외로 떠나면서 지금은 약 4천개로 줄었다. 그동안 오타구는 세계 최고의 부품소재 클러스터가 되었으나 기업 수로는 서울디지털단지의 상대가 안 된다.

남은 일은 세계 최대인 산업단지를 최강의 클러스터로 키우는 일이다. 창의와 자유, 보람과 재미, 배움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어, 단지의 모든 구성원들이 품위 있는 근로생활(QWL: Quality of Working Life)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지를 가로지르는 남부순환도로와 국철을 지하화하고 안양천 등 수변공원을 연결하는 한편, 옛 자취를 느낄만한 상징물도 하나쯤 만들면 좋겠다. 세계적인 클러스터가 되려면 `서울(Seoul)`이라는 글로벌 브랜드도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산업입지연구소장 윤종언 joyoon@e-clus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