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DA라는 기기가 있었다. 휴대폰보다 조금 큰 크기에 일정관리 기능뿐만 아니라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구동할 수 있다. PC와 동기화해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었다. 시장의 강자는 팜사의 팜과 컴팩의 iPaq 이었다. 통화 기능을 넣은 제품까지 나오면서 휴대폰의 미래처럼 보였다. 하지만 2007년부터 판매량은 급감했고, 팜은 일본 회사에 팔렸다 다시 HP의 손에 넘어갔다. iPaq은 현재 사실상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원인은 스마트폰의 등장에 있다. 애플은 아이폰을 내놓고 돌풍을 일으켰고,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내놓으면서 빠르게 시장에 침투하고 있다.
유사한 현상이 TV쪽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지난 수년간 TV를 똑똑하게 하려는 시도는 무척 많았다. 단순히 방송국에서 틀어주는 TV를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프로그램을 골라보고,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프로그램을 녹화해 보기도 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TV에서 구현할 수 있었다.
HTPC라고 불리는 거실용 PC 시장을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미디어 센터라는 전용 운용체계(OS)도 내놓았고, 디빅스 플레이어라고 불리는 HDD가 달린 재생장치도 있었다. 아이폰으로 스마트폰 확산의 시발점이 되었던 애플도 애플TV라는 디빅스 플레이어와 유사한 기기를 내놓았다. 방송사업자도 자신의 플랫폼에 양방향 방송 기능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가장 양방향성이 뛰어난 망을 가진 IPTV 사업자는 VOD와 양방향 기능을 핵심 기능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이들 중에 스마트폰의 성공만큼 성과물을 낸 서비스는 없다. 원인을 TV자체가 가지는 수동성에서 찾는 이들도 많다. 실제로 TV는 흑백에서 컬러로, 컬러에서 디지털로, 디지털에서 3D로 발전했지만 시청행태 측면에서는 리모콘의 도입을 제외하고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TV에서 시청자들이 상호작용성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단정지어서는 안된다. 단적인 예로 가정용 전자기기 중 가장 격렬한 상호작용을 보이는 콘솔 게임기는 TV에 연결해서 사용한다.
지금은 폭풍이 오기 전의 고요다. 올해 말을 기점으로 다양한 기업들이 이 스마트TV 시장에 도전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에서 준비부족으로 애플에게 타격을 받고, 대안 부재로 안드로이드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던 휴대폰 시장을 보면 스마트TV 시대에 우리가 얼마나 준비되었는지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대기업 제조사들이 스마트TV를 대응한 기기들을 내놓고 있지만 글로벌 환경에서 경쟁력을 지닌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수출 효자품목이었던 휴대폰이 이미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큰 변화를 겪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응 부족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지닌 휴대폰을 만들어왔지만, 디자인과 앱스토어로 무장한 아이폰 앞에서 허둥지둥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대응 부족은 HW에 강점을 지닌 대기업 제조사들이 SW적인 마인드가 필요한 스마트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수출 효자품목인 TV는 LED TV, 3D TV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디스플레이 제조 능력을 가진 국내 대기업 제조사들로 인해 큰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다가올 스마트TV 시대에서 이러한 HW 경쟁력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 스마트폰과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으려면 대기업 제조사뿐 아니라 정부, 방송사업자, 관련 중소기업이 미래를 읽고 SW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인프라웨어 연구소장 김경남 knkim@infrawar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