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서의 성공은 말 그대로 전 세계에서의 성공을 의미한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이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기 위한 비법은 무엇이 있을까. 전자신문은 창간 기획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위치한 KOTRA 실리콘밸리 코리아비즈니스센터(KBC)에서 한국을 잘 알고 있고 동시에 이곳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직접 들어봤다. 주요 질문 내용은 △제2의 닷컴 붐은 오는가 △한국 벤처의 한계 △한국 벤처가 세계시장 개척을 위한 과제 세 가지다.
이 자리에는 김영웅 실리콘밸리 KBC센터장, 김종갑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미주기술확산센터장, 박영준 인케 실리콘밸리 의장(Jujube인베스트먼트 대표), 반도체 장비업체인 KSM의 홍석일 마케팅 · 운영 이사, 벤처캐피털업체인 스틱인베스트먼트의 스티븐 곽 미국 사장, 알렉스 C 박 변호사 6명이 참가했다.
#.제2의 벤처 붐은 오는가
◇스티븐 곽 스틱인베스트먼트 사장=제2의 닷컴붐이 오겠느냐고 질문하면 `찬성` 쪽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과거 인터넷을 기반으로 닷컴붐이 왔다면 이번에는 인터넷을 포함해 모바일 등 다양한 환경에서 나타날 것이다. 4G(세대)로 넘어가면 시장은 더 크게 열린다. 이미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콘텐츠 시장이 크게 열리고 있다. SNS에 들어가는 게임 업체가 20억달러의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 다양한 파생 비즈니스와 벤처가 나타날 것이다. 이들의 소비시장은 전 세계지만 중심은 실리콘밸리에 있다.
◇김영웅 실리콘밸리 KBC센터장=IT분야에서 과거와 같이 벤처 영광을 재현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정부 지원과 함께 각종 프로젝트가 나와 빠르게 시장이 커졌으나 글로벌 경기침체 후 활발하지 않다.
특히 지금은 정부 부양책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데 그 분야가 IT보다는 그린 · 바이오에 쏠리고 있다. 이곳 실리콘밸리에 있는 벤처캐피털업계가 하는 말이 정부 지원예산의 대부분이 IT보다는 그린(녹색)과 바이오에 집중된다고 한다. 물론 이 산업 기반에는 IT가 있다. IT를 바탕으로 한 융합산업들이다. 실리콘밸리를 과거처럼 IT만으로 봐서는 안 된다. 최근 투자 트렌드를 봐도 바이오와 신재생에너지 쪽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IT가 현재진행형이라면 그린 · 바이오는 미래진행형 산업이라고 보면 된다.
◇박영준 인케 실리콘밸리 의장=IT와 바이오, 그린을 분리해서 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모두 IT와 연관돼 있다.
◇김종갑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미주기술확산센터장=통계치만 믿으면 한계가 있다. 최근 그린과 바이오 산업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는 데 이는 이 분야에 투자가 한번에 대규모로 집행됐기 때문이다. SW산업의 경우 설비투자가 필요하지 않아 200만~300만달러의 투자면 된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었지만 여전히 IT산업이 이곳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또 통계와 관련해 흥미로운 자료가 있다. 이곳은 창업하는 기업 수가 경기와 반비례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실업률이 올라가는데 이들이 계속 노는 것이 아니라 창업을 한다. 어려운 시기에 헝그리 정신으로 아이디어를 상품화해 경기 회복과 함께 크게 성공한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도 숨은 곳에서 우량 벤처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박영준=그 배경에는 스탠퍼드대학이 있다. 스탠퍼드대학에서 꾸준히 고급인력이 배출되면서 경기가 나빠져도 지속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홍석일 KSM 마케팅 · 운영 이사=시장 변화에 따라 산업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태양광 산업의 경우 지난해 한번 크게 떴다가 이윤이 많이 남지 않고 국제 원유가격이 원상복귀하면서 경기가 나빠졌다. 이에 따라 태양광 패널보다는 새로운 기술로 비용적인 효과가 큰 기술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반면에 최근 반도체 산업은 큰 호황이다. 반도체 단가 인상 여파로 반도체 회사의 투자도 늘고 있다.
◇알렉스 C 박 변호사=최근 실리콘밸리에서의 인수합병(M&A) 트렌드를 보면 산업 간 컨버전스가 크게 늘고 있다. 과거 동일한 산업에서만 M&A가 있었다면 최근에는 기존 기업이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기 위한 기술을 얻기 위해 인수전에 나선다. 지금 이곳 주요 IT업체들은 자금이 넘쳐난다.
이 자금으로 올해 4분기와 내년 1분기에 대거 인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2년 동안 불필요한 인력을 많이 내보냈고 부채도 많이 정리했다. 거품을 많이 빼서 핵심기술 개발에 충실할 수 있는 상황이다.
#.실리콘밸리에서 본 한국 벤처의 한계
◇박영준=한국 업체는 시장의 수요에 맞춰 개발하는 능력이 약한 것 같다. 이곳 기업은 시장에서 원하는 것을 철저히 파악하고 그것을 반영해 엔지니어가 개발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은 엔지니어가 원하는 것을 개발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만든 제품을 미국에 파는 것이 힘들다.
◇김영웅=KOTRA가 올해 국내 중소벤처기업 글로벌 파트너링 사업의 일환으로 구글에 모바일 분야 애플리케이션과 부품 · 하드케이스 업체 58곳을 소개해준 적이 있다. 구글은 한 달 반 검토한 결과 58곳 가운데 투자 또는 제휴에 관심이 있는 곳이 한 곳도 없다고 밝혀왔다. 놀라운 것은 이들 한국 기업 상당수가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대기업에 납품을 하고 있다.
구글 측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획기적인 아이디어 기술`이라며 배경을 들었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새로운 기업을 찾아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과거에는 그런 곳이 많이 보였는데 최근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홍석일=미국 시장을 뚫으면서 느낀 것인데 이곳 업체의 눈 높이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삼성전자 등 세계적인 기업에 납품했다고 해서 여기서도 쉽게 거래를 할 수 있다고 보면 안 된다. 한국에서는 조금 틀리면 고쳐나가면 되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그런식의 사고는 큰 문제가 된다.
◇김영웅=해외시장 개척을 너무 서두르는 것도 문제다. 단적으로 SW시장은 개척에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미국 문화를 체험하고 거기에 맞게 SW를 개발해 팔아야 한다. 한국에서 김치 · 깍두기를 담던 사람이 미국에서도 우리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서는 팔 수 없다.
◇스티븐 곽=정확한 지적이다. 미국에서는 엔지니어도 마찬가지지만 CEO와 마케팅 담당자가 수시로 개발자 회의에 참석한다. 이를 통해 소비시장 트렌드를 파악하고 경쟁사가 무엇을 개발하는지 확인한다. 이는 바로 제품 개발에 반영한다. 한국은 개발자끼리만 모여서 만든 다음에 출시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는 미국시장에 먹히기 힘들다.
◇김영웅=저작권 보호도 문제다. 우리 기업이 신뢰를 많이 잃었다. 심지어 한국에 직접 투자를 하지 않고 대만업체에 투자해 이들이 한국에 법인을 만들어 생산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홍석일=조금이라도 복잡한 장비 도면은 한국에 못 들어가게 막으려고 했던 사례를 경험한 적도 있다.
◇알렉스 박=물론 실리콘밸리에서도 기술 복제는 적지 않게 나타난다. 모방도 하고, 기술을 훔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곳 변호사들이 바쁘다. 회사 내부 인력이 핵심기술을 갖고 나가 창업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 벤처가 세계시장서 살려면
◇김종갑=이곳 벤처가 크게 성공할 수 있는 요인으로 믿음을 갖고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점을 꼽고 싶다.
한국의 벤처캐피털업체는 대개 20억~30억원을 투자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회수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20억~30억원은 단순히 초기자금 수준이다. 페이스북만 해도 수천억원 이상을 받은 것으로 안다. 우리나라엔 그런 생태계가 없다.
한국의 벤처기업이 목표 시장규모를 200억~300억원 정도로 보는 것도 문제다. 만약 몇조원 규모의 글로벌 시장을 보고 한다면 미국 수준의 투자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기업을 규모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수용 기업과 수출용 기업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해외 수출 기업의 경우 실리콘밸리에서 당당히 싸우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홍석일=우리 회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지금 돌이켜보면 기술이 모자랐고 부단히 노력해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미국에 샘플을 납품하는 데까지만 2년이 소요됐다. 그 과정에서 이곳 기업으로부터 교육 자료만 캐비닛 3개 규모를 받았다.
◇김영웅=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다. 진짜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차별화된 기술을 보유해야 한다. 한국 벤처캐피털업체는 아이디어와 기술의 잠재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매출이 얼마나 발생할지를 보는 것 같다. 회사의 외형을 키우는 데 돈을 투자하는 상황이다.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스티븐 곽=한국 기업이 미국을 따라하는 것만이 정답인지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업체 스스로 고유기술과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서 최근 개발하는 기술을 보면 기존 방식에서 약간만 방향을 튼 수준인 경우가 많다. 나쁘게 말하면 트릭을 줬다고도 할 수 있다. 제조업에서 볼 때 획기적이지 않으면 크게 반향을 일으킬 수 없다.
◇홍석일=이곳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분명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 남들이 50만번 테스트를 했다면 우리는 100만번을 하고, 남들이 4주 만에 개발했다면 우리는 2주 만에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경쟁력이고 살 수 있는 방법이다.
◇김종갑=여기서 성공한 기업들은 마치 하루아침에 뜬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검증에 검증을 거친 기업들이다. 준비를 많이 했고, 이를 통해 기회가 왔을 때 잡은 것이다. 성공 후의 모습만 봐서는 안 된다.
◇김영웅=최근의 분위기를 보면 과거 벤처붐 시절과 같은 닷컴 신화기가 다시 열릴 것 같은 느낌이다. 한국기업은 그때를 준비해야 한다. 물밑으로 다른 기업과 교류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초창기부터 참여해야지 시장이 열린 다음에 나서면 늦다. 이를 위해 이곳 업체와의 지속적인 네트워킹이 필요하다.
◇김종갑=세계적인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시간을 두고 진행해야 한다. 세계시장을 보고 사업한다면 미국 등 해외에 가서 투자를 받는다는 것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실리콘밸리(미국)=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짐 스페어 카네스타 CEO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자동차로 101번 하이웨이를 35분여 달려 벤처업체 카네스타(CANESTA)를 찾았다.
설립된 지 10년이 넘은 회사로 3D 센서를 개발한다. 기존 3D 센서는 두 대의 카메라를 요구하지만 카네스타는 한 대의 카메라로 인식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카메라가 사람의 동작을 인식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했다. 카네스타가 단독 개발해 특허등록한 기술로 이를 통해 사람이 원거리에서 몸 동작만으로 TV를 작동할 수 있다.
누구도 갖고 있지 않은 기술을 보유한 카네스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급하진 않은지 짐 스페어 CEO에게 물었다.
“오랫동안 참고 견딜 수 있는 곳이 실리콘밸리입니다. 동시에 누구도 생각지 못하는 빅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곳입니다. 인텔 · 애플 · 구글 등 이곳에 있는 모든 기업 중 하루아침에 성공한 곳은 없습니다. 커다란 목표를 갖고 현실화시킨 결과입니다. 투자자들은 충분히 시간을 갖고 기다려줍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지금 기술을 꿈꿔왔을까. 대답은 `아니다`였다.
“처음에는 3D 센서를 이용한 키보드 인식에 국한됐습니다. 그 이미지를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 큰 비전을 그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술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고, 이 기술이 앞으로 다양하게 사용될 것으로 확신했다는 뜻으로 들렸다. 실제로 비전도 시장의 수요에 맞춰 변화했다. 칩 위주에서 칩의 모듈화로 다른 기업의 SW를 함께 묶어 판매하는 방식이다. 일본 닌텐도의 게임기 위(Wii)와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비즈니스 모델은 또 한번 진화했다.
고객이 찾는 기술과 제품. 그것을 어떻게 확인할까.
“대기업 그리고 제조사와 계속 논의합니다. 정보교류를 끊임없이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일반 사용자를 불러 수시로 테스트를 합니다. 기업이 원하는 것도 있지만 최종 소비자가 정의를 내려야 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회사를 나스닥에 상장시키는 것보다 대기업에 매각하는 것을 더 바라는 곳이 많다. 짐 스페어 CEO도 마찬가지였다.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과감히 매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카네스타는 대기업의 인수 제안을 받았으나 가격이 맞지 않아 중단됐다.
카네스타는 43개의 특허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카네스타뿐만 아니라 실리콘밸리 벤처는 남들이 없는 기술 개발에 매진한다. 그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올까.
“누구나 아이디어를 냅니다. 획기적일 수도 있지만 상용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우리는 회의를 거쳐 이 아이디어가 현실화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검토하게 됩니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모두 성공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짐 스페어 CEO는 회사에 대해 “강력한 특허기술을 갖고 있는 것이 강졈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최고 기술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과 언젠가는 이 기술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실리콘밸리(미국)=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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