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공단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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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컨대 나의 시작은 `공단`이었다. 당시 비하하는 말로 여겨지던 공돌이와 공순이들의 삶의 터전 `구로공단`, 그곳이 바로 내가 IT기자로서 첫 걸음을 뗀 곳이다. 신참 기자시절 구로 공단에는 섬유업체들도 많았지만 맥슨전자, 나우정밀, (주)남성, 대륭정밀 등 통신업체들이 즐비했다.

통신업계를 주로 취재했기 때문에 맥슨전자, 나우정밀 등 업체를 자주 들락거렸다. 가리봉역에서 내려 20분 이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출입처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전철역 바로 앞 게시판에는 직원 채용 공고물이 어지럽게 나붙어 있었고, 공단의 길거리는 다소 휑한 느낌이었다. 한겨울 취재를 다니려면 칼바람이 진짜 매서웠다.

신참 기자 입장에선 IT를 취재하는 게 여간 재미있지 않았다. 하다못해 일반인에게는 별 주목을 끌 물건도 아니었던 `전화기`만 봐도 직업적인 호기심이 발동했다. `IT`라는 생소한 분야를 처음으로 접했으니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았으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당시 무선 전화기가 국내에서 막 뜨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전화기를 취재하면서 소위 `주파수`니 `전파`니 하는 개념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무선 전화기에 왜 혼선이 생기고, UHF, VHF 등 주파수 대역의 전파적인 속성이 어떠한 지를 어깨너머로 배웠다. 다행스럽게도 구로공단 내 입주 업체들의 기술은 당시로서는 `첨단`을 달렸다. 무선전화기, 무전기, 셀룰러폰, 키폰, PABX 교환기, 페이저, 위성방송수신기 등 다양한 제품들이 개발되고, 해외로 수출됐다.

박동하는 한국경제의 심장이 바로 구로공단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또는 논리적으로 이해했다.

물론 외견상 산업 현장이란 게 투박해 보이기도 했지만 취재기자에게 공단이란 곳은 대한민국 산업 현장의 진면목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시금석`같은 존재였다. 물론 구로공단의 성격상 노동 운동도 적지 않았다. 사업장 곳곳에 걸려 있는 노동조합의 거친 현수막, 사업주와 노동자의 갈등. 그 마저도 한국경제의 중요한 단면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G밸리에 서면 대한민국 산업사의 현장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많은 기업들이 이곳 공단을 떠나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했고, 경쟁력이 없어 IT에서 타 업종으로 업종을 변경하기도 했다. 중국 업체들의 파상 공세에 밀려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업체들이 문을 닫거나 주인이 바뀌기도 했다.

풍경도 바뀌었다. 과거의 노동자 대신 이제는 MP3플레이어용 이어폰을 귀에 꽂거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젊은 세대들로 공단은 넘쳐난다. 공장 대신 비슷한 이름의 벤처빌딩과 아파트형 공장이 숲을 이룬다. 업종도 제조업체 대신 지식산업군으로 채워졌다. G밸리라는 별칭도 생겼다.

G밸리에는 현재 1만개에 달하는 업체들이 벤처신화 창조를 위해 뛰고 있다. 일부는 성공의 과실을 따먹고 있고, 일부는 과정에 있다. 물론 존폐의 위기에 처한 업체도 있다.

“그 사이 무엇이 변했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격동의 시간을 지나왔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역동성`을 대변한다는 측면에서 구로공단과 G밸리는 본질적으로 같다. 구로공단이 한국 산업사에 분명히 한 획을 그었다면 G밸리는 `현재 진행형`일 뿐이다. 과거 공단이 제조업을 대변했다면 현재의 G밸리는 지식산업을 대변한다는 게 다르다. 문제는 사람이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G밸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희망을 보고 싶다. 요새 자꾸만 그들의 얼굴을 유심히 보게 된다.

장길수 G밸리 팀장 ks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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