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 도쿄에 갔을 때 일이다.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신용카드를 내밀었는데 종업원이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때마침 환전해 간 현금이 모두 바닥난 터라 동료를 남겨 두고 환전이나 현금서비스가 가능한 은행과 현금지급기(ATM)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그 음식점만 신용카드 사용이 안되는 것이 아니었다. 기자가 들른 거의 대부분의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 등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었다. 심지어 외국계 패스트푸드점도 마찬가지였다.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호텔 정도였다.
국내에서는 하다못해 동네 편의점에서 몇천원짜리 물건을 구입하고도 신용카드 사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산업과 경제가 고도로 발달한 일본에서, 그것도 수도인 도쿄에서 신용카드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도쿄에 수년째 살고 있는 지인은 일본인이 신용카드를 잘 사용하지 않는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다. 일본은 한국처럼 신용카드를 무작위로 발급하지 않는다는 것, 와리깡(더치페이) 문화와 무분별한 소비를 염려하는 일본의 국민성 등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세 번째 이유가 놀라웠다. 신용카드 사용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IT인프라가 잘 갖춰져야 하는데 일본은 일부러 이런 시스템들을 개발하거나 확대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IT인프라가 발달하면 이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인력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을 염려한다는 얘기다.
물론 세 번째 이유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불편함이나 발전하는 기술의 혜택보다 일자리를 먼저 생각하다니….
신용카드 인프라에 대한 일본인의 생각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사고방식 속에 숨어 있는 `인간적인 IT`에 대한 철학 혹은 고민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최근 모바일 오피스, 스마트폰 등 급속하게 발전하는 IT는 불가피하게 비인간적인 아픔을 양산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업무 처리가 늘어나면서 업무 강도가 더 강화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속도 경쟁이 불가피한 현상이고, 첨단 IT를 활용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좀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성찰이 아쉽다. 첨단 IT로 인해 오히려 삶이 더 피폐해지는 것은 막아야 할 것이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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