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여름.
유난히 무덥고 길었다. 이 무렵, 재계 최대 관심사는 단연 통신사업자 허가방식이었다. 정부가 7월 4일 PCS 등 7개 분야 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밝힌 상태여서 다음 수준은 사업자 수와 허가 방식에 눈이 갈 수 밖에 없었다. `황금알을 낳은 거위`인 통신사업권을 누가 확보하느냐는 기업의 흥망성쇠가 달린 사안이었다. 재계는 모든 안테나를 총동원해 정보통신부가 발표할 허가신청 요령 시안에 촉각을 세웠다.
통신시장 개방의 완결판인 `통신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본정책 방향`을 발표한 정보통신부는 이후 긴박하게 돌아갔다. 당시 통신정책의 키워드는 공정한 사업자 선정이었다.
과거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 시 정치공세에 휘말린 쓰라린 경험이 있는 정보통신부는 만전을 기했다. 두드린 돌다리도 다시 두드려 볼 정도로 신중했다.
정보통신부는 각 국별로 이미 발표한 기본정책 방향관련, 업무를 분담해 사업권 선정을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통신사업자 추가 허가계획 공고와 선정 작업은 정보통신지원국(국장 이성해)이 맡기로 했다. 통신사업자용 주파수 배분 및 운용효율화 방안은 전파방송관리국(국장 박영일)이 담당키로 했다. 이밖에도 업무에 따라 각 국별로 후속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8월 10일 정보통신부 기자실.
이성해 국장(정통부 정보화기획실장 역임, 현 큐앤에스 회장)은 이날 통신사업자 허가신청 요령 1차 시안을 발표했다. 이는 통신사업권 진출의 스타트 라인에 서는 기업들이 준비해야 할 기준을 밝힌 것이다.
이 국장은 “PCS와 무선데이터통신 분야에서 전국사업자를 각각 3개씩 신규 허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계는 개인휴대통신(PCS)사업에 가장 관심이 많았다.
국제전화 신규사업자는 1개, TRS(주파수공용통신)와 CT-2(발신전용 휴대전화)는 전국사업자 각 1개와 지역사업자 9개(TRS) 및 10개(CT-2)를 허가한다고 발표했다.
무선호출 신규사업자는 수도권과 부산 · 경남권 등 2개 지역에 한해 각 1개씩 2개를 허가하고 전용회선사업은 희망지역별로 사업자수에 관계없이 적격업체를 신규사업자로 선정키로 했다. 이는 한국통신을 국가기간전산망 운영을 위한 주도적 통신사업자로 육성한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허가신청법인은 다른 사업분야와 사업구역에 중복신청할 수 없되 5% 미만의 지분참여가 가능하며 한국통신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중복신청을 허용했다. 또 지역사업에는 중소기업 및 중견기업의 참여를 우대하는 대신 대규모 기업집단의 참여를 제한토록 했다.
가장 중요한 사항은 심사기준이었다. 정보통신부는 1차 자격심사 후 2차 기술개발출연금으로 평가하가로 했다. 1차 심사 기준은 △전기통신서비스 제공계획의 타당성 △설비규모의 적정성 △재정과 기술능력 △기술개발실적 △법인의 적정성 △기술개발 계획 등 6개항이다. 이들 심사항목에 대해 적격판정을 받아야 2차 경쟁을 할 수 있게 했다.
출연금으로 심사하는 2차 기준은 상한선 설정여부와 출연시기(일시 또는 연도별) 등에 따른 5개항이 제시됐으나 확정하지 않았다. 이는 같은 해 7월 26일 공청회에서 출연금이 쟁점이 된 까닭이다.
허가 신청 시 필요한 서류는 △허가신청서(기존 사업자의 경우 변경허가신청서) △정보통신발전을 위한 기술개발지원계획서(출연금) △사업계획서(법원의 기본사항, 영업계획서, 기술계획서, 기술협력, 연구개발, 인력양성계획서와 요약본) 등 3가지였다.
사업계획서와 기술개발지원계획서는 동시 접수하며 사업계획서 분량은 전국사업자는 250쪽 이내, 지역사업자는 150쪽 이내, 그리고 요약문은 20쪽 이내로 작성토록 했다.
정보통신부의 이날 허가신청요령 1차 시안은 지방 중견기업들이 통신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활짝 열어 주었다. 대신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해서는 지역 통신사업 참여를 제한했다. 이런 방침은 지역에 기반을 둔 중소기업 및 중견기업 참여를 장려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이 같은 허가신청요령은 이 국장과 이규태 통신기획과장(서울. 부산체신청장 역임, 현 한국IT비즈니스진흥협회 부회장), 최재유 사무관(현 방송통신위원회 이용자보호국장) 등이 마련했다. 여기에 통신개발연구원 이명호 실장(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통신정책연구실장)과 최선규 팀장(현 명지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과교수), 염용섭 박사(현 SK 경영경제연구소 정보통신연구실장) 등이 전담팀으로 참여했다.
이런 1차 시안은 정홍식 실장과 이계철 차관을 거쳐 경상현 장관까지 보고를 했다.
경 장관의 회고.
“그 당시 무척 바빴어요. 시안과 관련해 특별히 지시한 기억은 없어요.”
이렇게 만든 시안에 대해 공청회를 개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규태 기획과장의 회고.
“지시를 받고 공청회 준비를 했습니다. 우선 장소를 구해야 했습니다. 당시 허가신청 요령에 대한 재계의 관심은 높았습니다. 사람을 많이 수용할 수 있는 장소를 구하는 게 급했습니다. 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회관 등인데 한여름인데다 시일이 촉박해 장소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과장은 고민고민하다 무릎을 쳤다. 궁하면 통한다는 이른바 궁즉통(窮卽通)의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것은 PC통신 천리안을 통해 `전자공청회`를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정보화 시대를 선도하는 정보통신부가 PC통신으로 정책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의미가 각별했다.
“공개 공청회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자공청회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런 아이디어를 이 국장에게 보고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이 국장은 흔쾌히 “좋다”고 했다.
정보통신부는 1차 시안을 발표한 11일부터 PC통신 천리안에 사이트를 개설했다. 전자공청회에 참여하는 일반인들은 `정보통신부에 바란다`(GO MIC)에 5번(95 통신사업자 허가관련 전자공청회)을 선택한 후 참가신청을 하고 선택메뉴에 따라 질문과 의견을 제시하는 방식이었다. 정보통신부는 사이트에 1차 시안을 전부 올리고 이들과 질의응답을 했다.
이 과장의 설명.
“크게 4단계 과정을 거쳐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정보통신부는 11일 오후 2시 통신사업자 허가계획 1차 시안을 사이트에 전부 올린 지 2시간 후인 11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신청 받은 사람들과 컴퓨터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어 △14일 오후 6시까지 의견을 접수 받고 △16일 오후 4시 정보통신부가 종합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당시는 데이터 용량이 작아서 100명 이내로 제한해 사전에 대화신청자를 접수받았다. 그 결과 87명 참가를 신청했다. 이들과는 질의 답변을 즉시했다. 그리고 의견개진 기간을 주고 각계에서 보내 준 의견이나 질문에 대해 이를 취합해 답변을 사이트에 올렸다.
이 전자공청회에는 삼성과 LG, 현대, 대우통신, 기아자동차, 한국전력, 코오롱, 모토로라 등 기업들도 대거 참여해 1차 시안에 대한 의견을 가감 없이 제시했다. 대화에는 이 국장을 비롯해 이과장 등이 모두 참여해 직접 채팅을 나눴다. 당시 타이핑이 능숙하지 않아 다른 사람이 대신 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국장의 기억.
“저는 독수리 타법 수준이었어요. 제 능력으로 즉시 글을 올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말을 하면 직원이 옆에서 대신 타이핑을 하는 식으로 대화를 했습니다. 직원들이 고생 많이 했어요.”
이런 방식의 전자공청회에 대해 업계는 “시간과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고 PC통신을 통해 광범위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다”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자공청회는 11일부터 16일까지 6일간 운영했다. 7개 분야 통신사업자 허가 요령 1차 시안에 대해 기업과 일반인들의 질문과 의견이 수없이 쏟아졌고 이에 대해 정책입안자들은 성의껏 답변을 했다.
정보통신부는 최종 답변을 16일 사이트에 올렸다. 이중 관련자들이 궁금해 한 두 가지를 알아보자.
- 신청사업자수가 허가대상보다 적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 그런 일이 발생해도 올해 안에 추가허가를 하지 않을 방침이다
-PCS에 대한 기술표준방식은?
▲ CDMA와 TDMA중 하나를 단일표준으로 할지, 아니면 복수표준으로 할지를 검토 중이다.
정보통신부는 전자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뒤 8월중 허가계획을 확정, 공고하고 오는 11월까지 허가신청을 접수, 심사한 후 12월중 허가대상업체를 선정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이었다.
정보통신부는 이에 앞서 7월 26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기본정책 방향에 대한 공청회를 열어 각계의 의견을 들었다. 이날 공청회에는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인데도 200여명이 회의장을 꽉 채웠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정부가 사업자 허가요령 발표하자 통신사업 진출을 노리는 업체들은 본격적인 허가신청 채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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