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맞아 청소에 나선 주부 A씨. 진공청소기를 끌고 이방 저방을 돌아다닌다. 진공청소기 자체도 무겁지만 콘센트를 연결하는 전선이 짧아 매번 다른 콘센트에 바꿔 끼워야 하는 것이 더 큰 일이다. 더운 날씨에 땀과 함께 짜증도 뚝뚝 떨어진다.
월요일 출근 길에 나선 A씨는 노트북PC 충전 케이블을 집에 두고 온 것을 깨닫는다. 외근이 있는 날이라 충분히 충전을 해야 하는데 난감하다. 구입한 지 1년이 넘은 스마트폰도 문제다. 웹 서핑이라도 좀 하면 배터리가 금세 방전돼 하루에 두 번 충전기를 찾아 꽂아야 한다.
노트북, MP4, 휴대폰, 디지털카메라…. 도대체 충전 케이블이 몇 개인지 모르겠다. 가방 속에는 언제나 전선이 가득하다. 집 안도 마찬가지다. TV, DVD 플레이어, 데스크톱PC, 프린터…. 온통 전선들이 얽히고 설켜 정리는 엄두도 못 낸다.
A씨의 고민을 단번에 해결할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선 없이 전기를 전달하는 무선전력(와이어리스 파워) 전송 기술이 그것이다. 무선전력 전송은 전기적 에너지를 공간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전파 전송의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전력 에너지를 무선 전송에 유리한 마이크로파로 변환시켜 에너지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간단히 말해 전선 없이 전기를 공급한다는 얘기다. 첫 번째 단계는 케이블 없이 근거리에서 무선으로 전력을 공급받는 형태가 될 것이다. 데이터 전송 네트워크로 치면 블루투스나 근거리통신망(LAN)과 같은 형태로 볼 수 있다. 패드 위에 모바일 기기를 올려놓으면 자동으로 충전되는 시스템 등으로 일부 기술은 이미 상용화됐다.
무선전력 전송 기술이 더욱 고도화된다면 `전기 유비쿼터스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사용자가 장소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정보통신 환경을 유비쿼터스라고 할 때 전기 분야에서도 비슷하게 언제 어디서나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트북PC가 꺼질까, 휴대폰이 방전돼 연락이 끊길까 하는 걱정이 단번에 사라진다. 충전소 부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전기차는 달리면서 자연스럽게 충전이 된다.
이런 환경이 구축된다면 전선이 없어지고 충전 케이블은 물론이고 궁극적으로는 배터리도 없어질 것이다. 전력 공급 회사도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수밖에 없다. 각각의 기기에 부여된 사용자의 ID만 확인되면 무선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추후 요금을 정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할 것이다.
◇IT 패러다임을 바꾸는 무선전력 전송=전 세계적으로 전력회사가 대규모 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전력망을 통해 이를 각 가정에 공급하게 된 것은 200년 정도 됐다. 이제 전력을 공급하는 전력망의 개념이 유선에서 무선으로 바뀔 수 있다.
무선전력 전송 기술이 상용화되면 휴대성과 편의성이 크게 확대된다. 모바일 네트워크가 우리 삶의 행동반경을 확대하고 정보 전달의 속도를 빨라지게 했다면, 무선전력 전송을 통해서는 모바일기기를 비롯한 전자기기의 사용에서 `완전한 자유`를 찾을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 인더스트리 애널리시스의 자료를 토대로 전자부품연구원(KETI)이 추정한 자료에 따르면 오는 2018년까지 전 세계 무선전력 전송 시장은 연평균 19% 성장해 420억달러(약 49조371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국내 시장은 2018년 40억달러(약 4조7020억원)로 예측된다.
현재까지 현실화된 무선전력 전송 방식은 크게 △접촉식 전송(유도결합방식) △근거리 전송(자기공명방식, 복사방식)으로 나뉜다.
유도결합방식은 현재까지 상용화된 제품의 대부분이 채택한 방식이다. 전동칫솔, 휴대폰 충전패드 등에 적용됐으며 3와트(W) 이하의 소형 전자기기에 적용 가능하다. 공급 전력에 대비해 공급전력대비 60~90%의 효율을 나타낸다.
아직 상용 제품은 출시되지 않았지만 근거리에서 수십W까지 무선으로 전송할 수 있는 자기공명방식은 가장 기대를 모으는 방식이다. 노트북PC 및 휴대형 전자기기 충전무선전원 공급, 전기자동차 등에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고 공급전력 대비 약 50%의 효율을 바라보고 있다.
RFID · 전자태그, 소출력 센서, PC 주변기기 등에 적용된 복사방식은 저출력 제품 위주로 상용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전력 효율은 공급전력 대비 10~50%로 낮은 편이다.
이 밖에 전자기파방사 방식으로 수십km까지 전력을 전송할 수 있는 방식도 있다. 우주 발전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머지않은 미래에 상용화=전 세계적으로 무선전력 전송 기술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다. 상용화 제품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MIT는 지난 2008년 무선전력 전송을 10대 기술로 선정한 이래 Witeicity라는 회사를 창립해 자기공명방식 무선전력기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m 거리에서 60W 전력 전송 시연에 성공하기도 했다.
인텔, 소니 등은 노트북PC 무선 전기 공급 기술을 개발하고 있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지난해 지하에 전력선을 매설해 온라인 전기버스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해외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본은 2015년을 목표로 무선전력공급을 상용화할 계획을 밝혔다. 우선적으로 TV 등 가전제품을 대상으로 가정 내에서 무선전력 공급을 상용화하고 점진적으로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2020년경에는 무선가전의 가구 보급률 목표를 80%라고 밝혔다.
아직까지 기술적인 제반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국제 표준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전자업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9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삼성전자, LG전자, LG텔레콤, 팬택, KT, LS전선, 삼성전기, 인텔, 퀄컴 등이 `스페셜 인터넷 그룹`을 구성해 무선전력 전송 관련 표준화를 추진 중이다.
또 국제적으로는 지난 4월 필립스, 노키아를 비롯한 전 세계 40여개 회원사가 무선전력연합(WPC)을 구성해 무선 충전기 인터페이스 표준 규격을 발표하기도 했다.
실제 적용 사례도 늘고 있는 추세다. 서울대공원은 지난 3월 카이스트에서 연구 중이던 온라인 전기차를 서울대공원 순환열차(코끼리열차) 구간에 적용, 세계 최초로 상용화해 본격 운행에 돌입했다.
온라인 전기차는 도로에 특수 전기선을 매설해 자기장을 발생시킨 후 발생된 자기력을 차량에서 무선으로 공급받아 이를 다시 전기로 변환해 배터리를 충전하는 방식이다. 별도의 충전소와 충전시간 및 대용량 배터리가 필요없다는 장점이 있다.
서울대공원 온라인 전기차는 2.2km 순환도로 중 400m 구간의 도로 5㎝ 밑에 특수 전기선을 매설해 무선충전을 한다. 서울대공원 측에 따르면 에너지 변환효율이 최고 74%에 이른다.
이처럼 활발하게 상용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기술적인 이슈가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공급되는 전력이 모두 제대로 전송되는 것이 아니라 무선 전송 과정에서 낭비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즉 전송효율성이 떨어져 전력 낭비가 발생하고 있다. 일부 기술 방식은 100의 전력을 공급했을 때 10만 전달돼 90%의 전력 손실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 전력이 무선으로 전달될 때 인체에 미치는 영역 역시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전기가 파동으로 만들어져 퍼질 때 인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일이다.
이와 함께 주파수 할당 이슈가 있다. 현재 무선전력 전송 분야에 특별히 할당된 대역은 없으며 ISM(Industrial-Science-Mechanic) 대역을 사용하고 있다. 향후 무선전력 전송이 활성화된다면 전용 주파수가 필요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국내에서 무선전력 전송 기술 개발이 활발하지 못하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국내에서는 무선전력 전송 기술 관련 특허 수가 10여건에 머무르고 정부 차원의 로드맵도 없는 등 기술 활동 수준도 낮은 편이다.
황지혜기자 goti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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