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부터 2년 이상을 끌어온 국가 R&D 거버넌스(지배구조) 개편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국가 R&D 예산 13조7000억원 가운데 3조2000억원을 쓰고 있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의 거버넌스 개편이 주요 대상이다. 최근 쟁점으로 부각된 과학기술계의 예산권과 출연연 이관을 둘러싼 핵심 이슈 및 현장의 목소리를 집중 점검한다.
과학기술 출연연 발전 민간위원장을 맡아 `새로운 국가과학기술시스템 구축과 출연연 발전방안` 보고서 작성을 직접 주도한 윤종용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50년 앞을 내다본 국가 R&D 체계를 만들어보자. 그에 대한 정부의 약속이 없었다면 이 일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며 출연연 개편작업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전했다.
실제로 이번 거버넌스 개편은 국가 R&D의 대표 격인 출연연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데서 출발한다. 정부 R&D 규모가 올해 13조7000억원으로 지난 1980년에 비해 무려 75배가 늘면서 과학기술계의 패러다임도 모방형 기술개발 구조에서 창조형 성장 시스템으로 꾸준히 개편해 왔으나 성과는 아직 미미하다.
1970년대 산업체 수탁연구 중심에서 국가연구개발사업으로 역할이 변해온 출연연의 연구과제의 기초연구 비중은 24%에 불과해 미국의 44.2%, 영국의 45.3%에 비해 현격히 낮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기초 또는 원천 연구방향으로 가야 할 연구기관의 기준과 역할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제로 산업기술연구회 보고서에 따르면 특허기술 이전 수익은 연구비 1억원당 0.46%로 독일 프라운호퍼의 7.76%에 비해 상당히 저조한 실적이다. 또 27개 부처와 청이 274개의 사업을 분산 지원하는 바람에 중복투자 우려도 제기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 2008년 기초기술연구회 산하 기관의 협동연구 비중이 전체 예산 1조5550억원의 11.5%인 1794억원에 불과했다. 따라서 융 · 복합화 트렌드에 맞춰 조직 간 유기적인 협력과 시너지 창출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조직 통폐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조직 통폐합이 과거 IMF 때처럼 힘없는 행정인력이나 비정규직을 포함한 연구원 전체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출연연 개편의 전제조건이다.
정부가 청와대 미래전략기획관실을 중심으로 추진하는 출연연 지배구조 개편안은 기존 26개 출연연이 소속됐던 산업기술연구회와 기초기술연구회를 해체하고 출연연을 지식경제부와 교육과학기술부 등 소관 부처로 편입한 뒤 단일 법인으로 통폐합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출연연과 출연연발전민간위원회는 국과위를 상설조직화하고 여기에 예산편성권 등을 부여하는 방안을 지지해왔다.
청와대는 이미 각 부처 행정요원 두 명씩 및 각계 전문가 등 총 15명 정도를 불러들여 다음 달 관련 법안 제출을 목표로 개편 작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번 주 내로 국가 R&D의 방향과 내용을 발표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장을 지낸 조성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금은 출연연에 위기이기보다는 재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국가 어젠다를 새롭게 수립하는 방향에서 출연연의 정체성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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