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와 사업하면 망한다. 불필요한 관행 때문에 재고가 넘치고 비용도 많이 든다."
이석채 KT 회장은 지난해 1월 취임 직후 중소기업 협력사 사장들과 간담회를 하는 자리에서 이 같은 원성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고질적 갑(甲)`으로 악명이 높아 납품 비리 등으로 전 사장이 구속되는 수모까지 당했다. 이 회장은 취임 초부터 상생 모델을 정착시키는 데 매달렸다. 처음에는 직원들조차 반신반의하고 협력업체들도 의아해 했다. 하지만 `상생(相生) 실험` 1년여 만에 협력업체들이 믿고 따르는 대기업으로 환골탈태하는 데 성공했다고 업계에서는 평가한다.
KT가 추진한 상생 사례에는 중소기업과 동반 성장한다는 의지를 담은 `3P 전략`이 있었다.
임직원 참여를 이끄는 최고경영자(CEO) 의지(Participation), 이익을 나눠 먹는 상생이 아닌 동반 성장(Partnership), 그리고 상생 문화 확산을 위한 엄격한 원칙(Principle)이다.
최고경영진은 지난해 6월 29일 `상생선언`을 전격 발표한 데 이어 지난 1년간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회장 직속 경영전략조직에 상생 임무를 맡기면서 "중소기업 아이디어를 빼앗는 직원은 용서하지 않고 엄벌에 처하겠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중소기업이 제안한 사업 아이디어를 가로챈 직원 2명을 직위해제하기도 했다.
KT는 상생 1단계로 구매 과정에 대수술을 감행했다. 협력업체들이 공멸하기 쉬운 최저입찰제 폐해를 과감히 도려냈고 현금결제와 금융지원을 강화했다.
KT 측 일물복수가 제도(최저가 낙찰제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로 혜택을 본 박병주 유비쿼스 본부장은 "예전에는 최저입찰을 없애겠다는 말만 무성했지만 작년 하반기부터는 진짜 실행하더라"며 "최근에는 납품가가 지나치게 낮다며 가격을 올려 주겠다는 의사도 타진해 왔다"고 말했다.
KT는 구매제도 개혁에 그치지 않고 6월 말 상생 2단계 전략인 3불(不) 선언을 발표하면서 상생 개혁을 위한 고삐를 더욱 당겼다.
KT의 상생 실험은 이익 나눠 먹기 방식이 아닌 `같이 크자`는 동반성장(Partnership)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KT 협력업체인 텔레콤랜드의 유기석 사장(54)은 얼마 전 KT에서 "원가절감을 할 수 있었던 귀사의 핵심 기술을 다른 경쟁 협력업체에 공개하라"는 황당한 제안을 받았다.
2년간 밤낮없이 개발해 만든 통신장비(그린 PDP 중계기)의 핵심 기술을 경쟁사에 공개하라는 요청이었다. 그 대신 이 장비가 확산돼 KT가 거두게 된 원가절감액의 절반을 텔레콤랜드에 돌려주고 향후 2년간 납품 보장은 물론 기존 구매 물량보다 15%를 더 사주겠다는 조건이 붙었다.
유 사장은 고심 끝에 KT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후 1년 만에 43억원이던 이 분야 매출이 134억원으로 성장하는 성과를 거뒀다.
KT는 약속대로 구매 물량을 보장했고 이 회사 장비 때문에 원가 절감을 할 수 있었다며 40억원 상당의 이익을 돌려줬다.
유 사장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KT가 약속을 지키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우리 회사의 도움을 받은 경쟁사들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고 설명했다.
KT는 특정 협력사의 기술을 다른 협력사들과 공유해 대기업과 협력사 전체가 이득을 보는 `성과공유제`에 이어 최근 `3불 선언`을 하기도 했다.
중소기업의 자원이 KT로 인해 낭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 기술개발 아이디어를 가로채지 않고 중소기업과 경쟁 환경을 조성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종전까지는 협력업체들이 KT의 구매 수요를 예측할 수 없어 생산ㆍ재고관리에 어려움을 겪거나, 제품 개발을 완료했는데도 상용화가 되지 않아 자원이 낭비되는 낭패를 본 일이 적지 않았다.
김일영 KT 부사장은 "시장과 기술 트렌드, 단기ㆍ중기 사업 전망에 따른 구매 수요를 미리 공개하는 수요예보제를 실시해 사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한 KT는 협력사가 제안한 아이디어나 기술이 도용되거나 경쟁 기업에 유출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비밀 유지 계약을 맺을 방침이다. 아울러 `아이디어 보상 구매제도`를 신설해 중소기업이 KT 사업에 기여하는 기술이나 사업 모델 등의 아이디어를 제공할 때 이를 적절히 보상하도록 했다. 일종의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KT의 상생 실험이 고무적인 것은 이석채 회장의 상생 개혁이 각 사업 부문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상생은 일선 직원들의 참여가 절대적이다. 서유열 KT 홈고객부문 사장은 최근 20여 개 협력업체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세 가지를 약속했다.
첫째는 KT 직원이 협력업체에 구두로 개발 지시를 내렸다가 나중에 흐지부지되는 일을 막기 위해 협력사에 대한 요청을 문서화하는 것, 둘째는 구매 담당자가 바뀌면서 협력업체가 공중에 붕 뜨는 일을 방지하는 것, 셋째는 협력업체가 떠안고 있는 제품 재고 문제를 최대한 해소해주겠다는 것이다.
[매일경제 황인혁 기자 / 손재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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