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을 피하려다가 귀신을 만났다. 예전 상사보다 더 꽉 막혔다. 나이들면 점점 보수적으로 바뀌는건지 ‘다른 데 해봤어. 책임질 수 있어. 내가 다 아니까 시키는 대로 해”를 입에 달고 산다. 자수성가형 독불장군이다. 부하들의 의견은 시쳇말로 씹어버리고 무시한다. 상사의 현실감 떨어지는 판단, 억지스러운 주장, 답답한 조치를 두고 볼 수 없는데 말릴 수도 없다. 귀담아듣지 않고 말 안 통하는 상사를 만나 인생의 고난이 어떤 건지 배워가고 있다.
용의 역린(逆鱗)을 건드리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한비자가 중국의 4대 신성한 동물인 봉황, 호랑이, 거북이, 용 중에 용을 임금에 비유하며 한 말이다. 역린(逆鱗)이란 용의 목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인데 만약 이 비늘을 건드리면 용은 미쳐 날뛴다고 한다. 잘 길들이면 타고 다닐 수 있는 용을 분노케 하는 역린을 조심해야 하듯 임금의 역린을 건드리지 말라는 교훈이다. 고전에서 현재를 배우자. 내 상사의 역린이 어디인지 관찰하자. 상사의 마음을 읽어야 상사를 설득할 수 있다. 상사가 치명적으로 감추고 싶어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은 덮어두고 모르는 척해야 한다. 괜시리 상사보다 잘난 척하면서 상사의 말을 반박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으로 몰아붙이면 아니 한만 못하다. 가급적 상사가 주안점을 두는 일에 링크를 걸어 귀를 솔깃 세우게 하자. 명예와 명분을 원하는데 실리와 이익을 따지면 천박하다고 욕먹고, 실리를 찾으려는데 명분만 따지면 세상 물정 어둡다고 욕먹는다. 상사도 부하가 길들이기 나름이다. 믿을 만한 부하의 앞뒤 맥락 고려한 근거 있는 글과 전후사정 파악한 부드러운 제안은 상사의 마음을 연다. 대부분은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한 채 마우스를 집어던지고 소줏집으로 간다는 데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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