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선수범하는 상사는 교과서에만 나오고 안하무인(眼下無人)격인 상사만 현실에 득시글거린다. 어려운 일은 능구렁이처럼 떠넘기고 누워서 먹는 떡만큼 쉬운 일만 겨우 한다. 자기는 손발이 없는지 커피 심부름부터 복사 심부름까지 별의별 일을 다 시킨다. 아예 저러다가 소문으로만 듣던 차량 주차부터 자녀 숙제까지 맡길 태세다. 상사는 하늘이고 부하는 땅이라는 이상한 구호를 어디서 듣고 와서는 자기는 빈둥빈둥 놀면서 우리만 시키는 상사, 자꾸 뒤에서 눈 흘기게 된다.
젊은 우리가 해주자. 잘난 내가 참아야지 어쩌겠는가.
그도 나처럼 그렇게 손발 노릇하며 올라왔다.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데 누릴 만큼 누려야 내려갈 것이다. 평생 나랑 같이 일할 것도 아니고 길게 봐야 5년이다. 야합과 결탁은 하면 안 되겠지만 타협은 해야 한다. 상사의 게으름에 나름의 합리적인 구실을 찾아 스스로 타협점을 만들자. 타협 없이 계속 눈 흘겨봐야 내 눈만 가자미 눈 된다. 사실 상사가 빈둥거리는 것 같지만 그 자리가 원래 그런 자리다. 골키퍼가 뛰지 않는 것 같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코치가 앉아있는 것 같지만 방향을 바로잡듯 상사의 자리가 원래 그렇다. 하는 일 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 같지만 존재 자체가 하는 일이다. 상사가 너무 나서고 꿰뚫어보고 잘 나도 주눅 들고 그늘진다. 상사의 무능과 무기력을 적당하게 용서하고 중재선에서 포기하자. 그렇게 나이 들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상사의 마음을 이해할 날이 올 것이다. 볼품없이 자리만 지킨 것 같지만 자리만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팔짱 끼고 빈둥거린 것 같지만 얼마나 속이 타들어가는지 이해할 날이 올 것이다. ‘내가 너희 때문에 늙는다’라는 소리가 자연스레 흘러나올 그 때쯤, 지금의 상사가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만 젊은 체력으로 참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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