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방향성을 경쟁과 효율로 잡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제출한 연구용역 결과와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원점으로의 회귀, 즉 재통합은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전력산업의 가장 큰 변화는 판매 부문의 경쟁도입이다. 규제를 풀고 전기요금을 연료비나 수요에 연동시키면서 민간 기업이 참여할 길을 열어 놓았다.
그런데 이 같은 기조는 지난 2000년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법 제정 이전에 다 나온 내용이다. 바람직한 전력산업구조는 10여 년 전에 다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누가 실행하는지다.
조성봉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계획은 나왔는데 자꾸 미루는 것은 정부가 공공부문을 민영화할 때 쓰는 전형적인 방법”이라며 “세부 실천 계획을 세우고 당장 집행해가면서 수정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도 “어떤 형태로든 지금처럼 어중간한 구조보다 나을 것”이라며 “원론적인 논쟁보다는 문제점은 최소화하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운영의 묘를 살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걸림돌이 되는 것은 원가 이하로도 과연 판매하는 사업자가 늘어날 것인지다. KEPCO(한국전력)의 요금제는 원가에 기초했다. 신규 사업자의 경우 이보다 가격을 낮춰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송배전망도 없으니 비용 부담이 늘어난다. 연구용역을 주도한 이수일 KDI 박사는 “신규 사업자가 이윤폭을 줄이면 될 것”이라며 “미래 사업성을 보고 참여하는 사업자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요금에 대한 정부의 정책 방향성은 과거 통신 부문 민영화에서 어느 정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KT는 과거 한국통신공사에서 통신망을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에 신규사업자는 접속료를 내고 이용하거나 직접 설치해야 했다. 당시 정보통신부는 유효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정부가 KT에 접속료를 과도하게 책정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적정 요금을 준수토록 했다. 신규 사업자들에게 진입 장벽을 낮췄다. 공기업이 시장참여자로서 존속하게 되는 점에서는 분명 다르지만 전력시장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통신과 전력 등을 묶은 상품이 등장하면서 스마트그리드가 해법으로 떠올랐다. 단순히 전력만을 판매하는 것은 원가 경쟁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압별 요금제 시행이나 실시간 요금제도 판매부문이 분리돼 있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결국 전력 시장도 경쟁과 효율을 피할 수 없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게 스마트그리드다. 각종 전력 관련 서비스를 소비자가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전력산업의 경쟁력과 효율성 경쟁은 결국 소비자로부터 비롯하기 때문이다.
유창선기자 yuda@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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