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호 계약서가 말썽이다. 최근 열린 교육과학기술부와 항공우주연구원의 브리핑에서는 계약서를 놓고 1시간이 넘게 열띤 설전이 벌어졌다. 정부 당국의 태도가 불씨였다.
이날 교과부는 나로호 공동발사를 위한 한러간 기술협력 계약서상의 핵심 내용을 첫 공개했다. 한 가지는 2차 발사 중 한 번이라도 실패하고 항우연이 재발사를 요청하면 ‘러시아는 이를 수용토록 규정돼 있다’는 조항이었다.
문제는 당초 정부가 지난해 1차 발사 실패 이후 한러간 공동조사위원회(FRB)가 이슈로 부각된 이후 일관되게 ‘계약서상 권리는 있지만 구속 조항은 없다’고 주장해왔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이날 갑자기 말을 바꿨다.
계약서 조항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기 위해 구속 조항에 대한 문구를 공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교과부는 “공개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 조항은 있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항우연이 추가 발사를 원하지 않는 경우 러시아 측에 지불하는 계약금액의 5%(약 1000만달러)를 지급하지 않을 수 있음’이라는 항목도 도마에 올랐다. 문서상에는 ‘우리가 추가 발사를 원하지 않는 경우’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이에 대한 해석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항우연 측은 이를 “러시아가 우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달아놓은 조항”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부동산 매매 계약서도 사소한 토씨 하나로 분쟁이 발생한다. 하물며 수천억원이 소요된 국가간 계약서가 상황에 따라 조항이 생겼다 없어지고,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해석을 할 여지를 남겨서는 안될 것이다.
나로호 계약서에 대한 본지 보도를 접한 한 원로 과학자는 이렇게 탄식했다. “(나로호 발사 준비 과정에서 2006년 체결한)한러간 우주기술보호협정은 을사늑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앞서 2004년에 체결한 한러 나로호 계약서를 둘러싼 잡음도 왠지 개운치 않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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