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측 강의평가 부실…우리가 바꾸자"

"1학기 영어 강의는 실패였다고 말하고 싶어요. 교수님 영어는 무난했지만 교수님도 학생도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서 수업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서울대 강의평가사이트)

"교수님이 아시는 게 진짜 많으셔서 강의 자체는 보람차요. 그런데 월ㆍ수요일 1교시라는 단점이 있어서 집중 못하게 만들고 교수님 목소리가 졸려서 상당히 힘듭니다."(고려대 강의평가사이트)

학교 측이 제공하는 부실한 대학 강의평가 결과에 학생들이 `뿔났다`. 객관성 논란과 자신에 대한 평가를 기피하는 교수들 분위기 탓에 강의평가 결과 공개가 지지부진한 사이 생생한 강의평가 정보 공유를 위해 학생들이 직접 나섰다.

각 대학 학생들이 직접 나서서 그동안 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만 전해졌던 강의평가를 웹에서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와 연세대 등은 총학생회나 학보사 중심으로 학생들이 강의 평가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지난 9일부터 `강의평가사이트`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는 3년 전부터 학생들이 강의평가사이트를 구축해 11일 현재 1만4000여 명이 1만7000여 강좌를 대상으로 4만8000여 개 강의평을 등록해 놓았다. 최근 강의평가사이트를 전면 개편해 시간표도 이 사이트를 활용해 작성할 수 있고 강의계획서도 바로 다운로드해 확인해볼 수 있다.

연세대 학생들도 학보사 연세춘추가 만든 사이트에서 강의평을 활발히 공유하고 있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지난 9일 강의평가사이트를 오픈해 개설 이틀 만에 가입자 550명을 끌어모았다. 미국 `Rate My Proffessor` 사이트를 벤치마킹했다는 후문. 보다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총 9개 항목에 대한 설문을 진행한다. 시험방식은 물론 필기방식, 출석체크 빈도, 교재 활용도, 주당 학습시간 등 학생들이 해당 강의를 선택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가 망라돼 있다.

강의 평가에 학생들 참여가 핵심이기 때문에 가입 후 강의를 3개 이상 평가해야 다른 학생들이 평가한 내용을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 측이 학생들 강의평가 결과를 그대로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객관성`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고려대는 학생들이 제출한 3년간 강의평가 결과 중 항목별 평점만을 지난 2월 처음 공개한 바 있다. 고려대 측은 이에 대해 "학생들 강의 평가는 주관성이 많이 녹아들 수 있고 한 사람 의견이 전체 의견을 좌우하게 돼 왜곡될 소지가 있다"며 "객관적인 평가지표를 사용해 평점만을 제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강의평가 상위 30% 교수 명단은 외부에도 공개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학생들 코멘트 등 추가적인 정보는 일절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일각에선 "자신에 대한 평가를 기피하는 교수들 분위기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고려대 한 교수는 "어떤 평가든지 객관성을 상실하면 안 된다"면서도 "강의평가 결과가 올해 들어서야 공개된 데는 평가를 기피하는 교수들의 완고한 분위기 탓인 측면도 일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의에 대한 평점이 전부인 학교 측 자료만으로는 제대로 된 강의를 선택할 수 없다고 학생들은 주장한다.

고려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학교 측이 제공하는)단순한 평균 평점 나열식 정보가 실제로 강의를 선택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교수들을 강의로 줄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원하는 정보를 공유한다는 데 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한정숙 서울대 교수는 "학생들이 단순히 학점을 잘 따기 위한 목적으로, 편한 과목을 듣기 위한 용도로 강의 평가 내용을 공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학생들도 나서서 강의평가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강의자들에게 자극이 돼 결국엔 강의 질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이기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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