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휴대폰 공장을 갖지 않고도 세계 제1의 휴대폰 회사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연구개발(R&D)에 전력을 기울이고 제품 제조는 전자위탁생산(EMS) 기업에 위탁하기 때문이다. ‘아이폰’을 생산하는 훙하이정밀(鴻海精密)그룹의 폭스콘, 구글의 ‘넥서스원’을 제조하는 HTC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스마트폰 시대는 영영 열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만의 ‘사회적 기업’=대만은 전 세계 PC·휴대폰·TV를 비롯, 반도체·LCD 부품을 위탁 생산하는 회사들의 본산지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의 50%를 담당하는 TSMC, 반도체 패키지 분야 1위 업체인 ASE도 대만 회사다. 정보기술(IT) 산업이 대만을 먹여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만 청년들은 취업하고 싶은 회사로 IT기업들을 꼽는다.
방송과 신문들도 IT기업들의 소식에 많은 시간과 면을 할애한다. 특히 지난해 매출 640억달러(약 79조5500억원)를 올린 대만 최대 기업인 훙하이정밀은 회사 자체 행사를 대만 TVBS 방송국이 전국에 생중계를 할 정도로 그 위상이 높다. 지난 2월 열린 이 행사에는 대만의 초대형 인기 가수들이 대거 출연해 노래를 부르고 궈타이밍(郭台銘) 회장에게 신년 인사를 했다.
훙하이정밀은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최고의 직장이다. 복지·연봉 수준이 높은 것은 물론이고 부가 수입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훙하이그룹 본사 직원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 회사는 추첨으로 직원들에게 현금을 나눠줬다. 타이베이에서 만난 그랜트차씨는 “1등 추첨자의 상금이 우리나라 돈으로 10억원 정도였다”며 “정말 놀라웠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대만 내에서 훙하이정밀이 사회 공헌도가 높은 기업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대만 최고 갑부인 궈 회장은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한다. 지난 2008년 전 재산의 90%인 60억달러를 사회에 환원했다. 그 전에는 암 연구 기금으로 150억대만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경영에서 물러나면 환경 보호와 의학 연구를 지원하며 여생을 보내겠다고 공언해왔다. 자신을 친 오토바이 운전사에게 오히려 수리비를 주는 등 약자 배려 철학은 대만인들에게 귀감이 됐다.
대만인 제니퍼첸씨는 “중국 폭스콘에서 일어난 자살 사고는 복합적인 요인이 있을 것”이라며 훙하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비쳤다.
◇중국의 ‘자살 공장’=중국 광저우 선젠의 폭스콘 공장에서는 13명이 자살을 시도했다. 올해에만 8명이 죽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알려지지 않은 자살 시도를 합하면 20건 이상의 자살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졌다. 12번째 자살자가 나온 지난 5월 26일 궈타이밍 회장은 공개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같은 공장에서 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폭스콘에 제품 제조를 위탁하는 글로벌기업의 관계자는 “중국 공장에 가보니 대만인과 방문객이 다니는 문과 중국인 노동자들이 드나드는 문이 아예 따로 있더라”고 중국 공장의 현실을 전했다. 그는 “기숙사 앞에만 가봤는데도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열악한 노동 현장에 대한 증언을 이어나갔다. “비좁고 악취가 났으며 식당 역시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달아날 정도”라고 덧붙였다.
훙하이그룹의 자회사인 폭스콘의 성공은 중국의 값싼 노동력에 토대를 뒀다. 중국 대륙의 폭스콘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선전 공장 2곳을 포함해 55만명에 달한다. 유럽·미국 등지에도 훙하이 지사가 있지만 인력 대부분이 중국에 있다. 훙하이가 중국에 폭스콘을 설립한 건 지난 1988년. 이후 ‘군대식 경영’을 표방하며 노동자들을 통제했다. 실제로 강도 높은 군사훈련을 거쳐 입사를 결정하고, 입사 후에도 엄격한 군대식 관리를 받는다. 생산 기지 내에는 공장·기숙사·식당·병원 등 필요한 부대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으며, 노동자들은 그 속에서 하루 3교대로 쉴 새 없이 제품을 만들어낸다. 특히 사내 보안 규정을 까다롭게 둬, 기밀이 누설되거나 제품이 외부로 반출되면 부서 내 모든 팀원까지 처벌한다. 지난해 8월 자살한 쑨단융(25)씨는 ‘아이폰 4’ 한 대를 분실하자 이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관리자로부터 감금·구타를 당했다. 엄격한 통제가 노동자들 간 불신 문화를 만든 것이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고강도의 노동력을 제공한 노동자 대부분이 받는 임금은 중국 최저 임금인 900위안(약 15만6600원)이었다.
폭스콘은 HP·델·소니 등 상위권 PC업체, 애플·노키아·모토로라 등 휴대폰 업체, 닌텐도 같은 가전 업체들이 위탁 생산을 하고 있다. 국내 기업으로는 삼성전자가 데스크톱 PC를 외주 위탁 생산한다. 지난 9일 폭스콘이 자살에 따른 전 세계 여론에 떠밀려 임금 50% 인상을 발표했지만 대대적인 노동 환경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비난 여론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저렴한 생산 가격의 수혜를 누렸던 IT 기업들도 그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폭스콘의 임금 상승분이 생산 원가에 그대로 반영되면 고객사의 수익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타이베이(대만)=오은지기자 onz@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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