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미리미리 시키고 싶다. 하지만 후려치기 하는 고객사, 갑자기 터진 일, 비로소 떠오른 아이디어를 난들 어쩌란 말인가. 내가 쌀 뿌리는 점쟁이가 아닌데 어찌 신내린 듯 술술 해야할 일, 긴급히 터질 일, 해 놓은 것에 덧댈 일들을 한방에 읊을 수 있겠는가. 이런 피치못할 야근을 송충이보다도 싫어하고 입은 산만큼 내놓고 있다. 낮에는 느릿느릿 걷다가도 퇴근시간만 되면 빠릿빠릿하게 퇴근을 준비하며 밤에 피는 야화마냥 저녁만 되면 생기발랄이다. 이럴 바엔 아예 근무시간을 오후 3시부터 밤 12시까지로 바꿔야겠다.
교통경찰에게 친절할 수 없다.
급한 마음에 중앙선을 넘었지만 내내 없던 그 자리에 오늘따라 있을 게 뭐람. 기다리고 숨어있다 나온 사람마냥 얄밉게 삐뽀거리는 그가 반가울 리 없다. 짜증나고 억울해서 얼굴이라도 할퀴고 싶을 지경이다. 가외업무로 야근하라는 상사는 딱지 끊는 교통경찰 같다. 교통경찰이 미운 게 아니라 이 상황이 미운 거다. 상사가 싫은 게 아니라 이 상황이 싫은 거다. 부하에겐 ‘야근이라도 해서 오늘 안에 끝내!’라는 말은 ‘면허증 주시죠!’만큼이나 억울하고 황당하다. 교통경찰은 싫은 내색을 하는 운전자 때문에 상처받지 않는다. 상사도 토달고 핑계대고 딴지거는 부하에게 열 받지 말자. 오히려 그 억울함과 짜증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근을 해야 하는 현실을 납득시켜야 한다. 이런 상황은 서로에게 유쾌하지 않다. 상사도 부하가 반항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저항하면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하느라 내심 긴장한다. 그러다 보니 더 딱딱해지고 더 무미건조해진다. 딱지 끊는 교통경찰처럼 말이다. 그러면 의도는 온데 간데 없고 서러움과 미움만 쌓인다. ‘웬놈이냐?’와 ‘누구세요?’가 천지차이고, ‘일동기립’과 ‘일어나 주시겠어요?’가 전혀 다른 느낌이듯 무슨 말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는지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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