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너 사주며 시간 스케줄에 대해 시범을 보이고, 정리함 사주며 책상 청소를 해주었다. 상사인 내가 심호흡하며 웃는 낯으로 해줄 수 있는 거는 다 해줬다. 그런데도 여전하다. 살을 파먹는 박테리아라도 살 것 같은 책상, 뱀장어가 휘저어 놓은 수족관 같은 서랍, 북북 그어댄 암호 같은 플래너까지, 일부러 하라고 해도 그렇게는 못하겠다. 책상이 어지러우면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느낄 것 같지만 거의 일하고 있지 않다는 표시다. 농담으로 비웃기엔 너무도 열불이 나는 부하의 정리 습관, 그냥 모르는 척해야 하나.
왜 플래너를 적어야 하고 책상을 정리해야 하는가.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듯 일하는 스타일도 다르다. 꼭 정리를 잘하고 깨끗해야 일을 잘하는가. 책상은 깨끗한데 창의적이지 않아 매일 베끼기만 하는 사람도 있고, 플래너는 잘 쓰는데 숫기가 없어서 영업실적이 안 나오는 사람도 있다. 필요행동을 챙기지 말고 핵심성과를 확인하자. 물론 플래너와 책상이 잘 정리되어 있으면 대체로 일이 쉬워진다는 상사의 성공체험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하에겐 다를 수 있다. 만약 부하가 책상 정리도 못하고 성과도 안 난다면 성과를 올리기 위해 책상 정리가 왜 필요한지 알려주자. 파일 찾는 시간을 재보고, 정리했을 때 얼마나 단축할 수 있는지 알려주자. 내가 요긴했던 정리함이 그에게는 과일상자만 못할 수 있다. 정리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부하 나름의 정리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해야 한다. 생텍쥐페리는 “배를 만들게 하지 말고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심어주라”고 했다. 사랑 없이 모질기만 하면 안 된다. 한석봉 어머니처럼 사랑이 있어야 한다. 도를 넘어선 가혹한 채찍질은 부하를 내몬다. 나를 낳아준 부모와도 ‘모진 사랑’의 숭고한 의미를 오해하곤 했다. 고통만 있고 모멸감만 주고 지칠 때까지 몰아세우면 부하도 날이 선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물게 마련이다. 사랑으로 도와주고 성과로 평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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