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윤정의성공파도]<344> 직장탐구생활-착한사람은 조직에 적응하기 어려워

 무궁화호는 머물러도 새마을호는 서지 않는 시골에서 살았다. 촌스럽고 물정 모르는 내가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려니 참 벅차다. ‘한판 붙자, 내가 쏠게, 이제부터 전쟁이다, 쳐내자, 공격이다’ 등 전쟁용어가 남발하고, ‘아부, 정치, 묘략, 연기’ 등 일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요령 좋고 머리 좋은 사악한 무리들이 사방에 득시글거리는 삶의 정글에 착하고 순진한 나 같은 사람은 아무래도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다. 밭 한 뙈기 살 돈만 모으면 다시 시골로 돌아가야지….

소망 하나 품고 살면 버티기가 수월하다. 그러나 그것이 ‘소망’인지 ‘도망’인지는 명확히 하자.

‘도망’을 준비 중이면 밭 한 뙈기 살 돈을 구하기도 전에 삶의 밀림에서 생존조차 어려울 수도 있다. 세상 물정이라곤 모르는 숙맥이라는 패배자의 마음으로는 승리자의 삶을 살 수 없다. 성공하면 나쁜 사람, 적응 못하면 착한 사람이라는 고정관념부터 버리자. 착해서 적응 못하는 게 아니라 무능해서 적응 못하는 거다. 아니 적응 못해서 무능한 거다. 윌리엄 폴 영은 ‘오두막’에서 “‘나’는 본래 ‘동사형’이다. ‘명사형’이 아니라 ‘동사형’이다. 생명력이 넘치는 ‘동사형’인 나를 죽은 ‘명사형’으로 바꾸면 안 된다. 나는 살아 있고 역동적이며 늘 활동적이고 또 변화한다”고 말했다. 한계짓지 말자. 스스로 패배자로 낙인찍으면 자기도 몰래 그 의식에 젖어가면서 스스로의 가능성을 닫아버린다. 어떤 운동 경기의 한계가 4분이었을 때, 4분 안에 들어오면 심장이 터져 죽는다고 했다. 몇 년간 그 벽을 넘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한 사람이 그 벽을 넘자 그 해에 동시에 4명이 그 벽을 넘었다. ‘도망’을 꿈꾸지 말고 ‘소망’을 바꿔보자. 시골 사람이지만 서울에서 잘 적응한 멋진 성공모델, 그래서 앞으로 시골사람에게 용기를 줄 ‘소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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