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 그 시작과 끝] <1> 정부조직 개편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1994년 12월 정통부 신설 정부조직도

 ‘IT’는 한국의 대표 브랜드였다.

 한국이 ‘IT강국’을 향해 본격 시동을 건 것은 김영삼 정부 시절이다.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한 것이 시발점이다. 그것은 IT강국 개막을 알리는 서곡이자 시대의 필연이었다.

 정보통신부 출범은 21세기 정보화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이는 과거 기술과 미래 기술이 융합이었다. 한국이 ‘IT강국’ ‘인터넷 강국’으로 급속히 부상한 것은 정보통신부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정보통신 정책을 적극 추진한 결과다.

 김영삼 정부가 단행한 정부조직 개편 중 가장 성공한 게 정보통신부 출범을 꼽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보통신부는 한국의 독창적 정부 조직이다. 한국 정보통신부를 벤치마킹해 정보통신 전담부서를 둔 나라는 29개에 달한다. 정통부와 같은 독임제 조직형태를 채택한 나라는 38개국이라고 한다.

 어느 국가건 역사의 굽이가 있듯이 1994년 12월은 한국 정보통신산업의 일대 전환기였다.

 이 무렵 한국에 앨빈 토플러가 말한 ‘제3의 물결’과 ‘권력이동’ 등 새로운 물결이 해일처럼 밀려 오고 있었다.

 역사의 시계바늘을 뒤로 돌려보자.

 1994년 12월 3일. 토요일.

 며칠 째 계속되는 추위탓에 오고가는 사람들은 목을 움츠리고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하늘은 냉수처럼 맑았다. 사람들이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김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평온한 자연의 모습과는 달리 이날 청와대에서는 엄청난 정부조직개편안이 요동치고 있었다.

 오전 9시반 경.

 검은색 고급 승용차들이 미끄러지듯 청와대 본관 앞으로 들어왔다. 김종필(JP) 민자당 대표 최고위원이 차에서 내렸다. 박관용 청와대비서실장이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JP가 박 실장의 손을 잡더니 속삭이듯 물었다.

 “대북(對北) 선언입니까?”

 긴급 소집한 고위 당정회의 안건에 대한 물음이었다. JP는 북한과 관련한 중대 발표인 것으로 짐작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철통보안을 유지할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전에 알려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정부 조직개편안입니다.”

 “그래요?. 그걸 비밀로 해야 합니까?”

 이영덕 국무총리 등 당과 정부의 고위층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곧장 본관 1층 회의실로 들어갔다.

 오전 10 정각.

 김영삼 대통령은 회의장에 입장해 참석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세계화추진 고위 당정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고위 당정 회의에는 민자당에서 김종필 대표 최고 위원과 이세기 정책위의장, 이한동 원내총무, 박범진 대변인, 정부에서 이영덕 국무총리와 홍재형 경제부총리, 박재윤 재무, 김철수 상공, 오명 교통, 오인환 공보,김숙희 교육, 김우석 건설, 황영하 총무, 서청원 정무장관 등이, 청와대에서는 박관용 비서실장과 이원종 정무, 한이헌 경제, 이의근 행정, 주돈식 공보 수석 등이 참석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철통 보안 속에 마련한 정부 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그것은 상상을 초월한 사상 최대 규모의 정보조직개편안이었다. 이 개편안은 문민정부 들어 세번째였다. 일부 언론은 ‘혁명적 개편’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김 대통령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정부조직개편의 당위에 대해 언급했다.

 “이번 정부 조직은 ‘세계화 추진’과 지방화에 맞도록 전면 개편을 하는 것입니다. 작지만 강력한 정부를 구현하고 규제위주에서 서비스 위주로, 그리고 국민의 복지와 창의력이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조직을 개편하고 합니다. 총무처 장관이 내용을 설명할 것입니다.”

 순간 회의장은 활시위 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황영하 총무처 장관은 준비해간 유인물을 참석자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리고 간략히 골격만 설명했다. 유인물을 배포했기에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해 재정경제원을 만들고 건설부와 교통부를 통합해 건설교통부를 신설합니다. 상공자원부를 통상산업부로 개편하고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개편해서 상공부와 과기처를 비롯한 다른 부처 업무 일부를 이관합니다. 또 환경처를 환경부로 승격하고 보건사회부를 보건복지부로 개편합니다. 공직자도 숫자를 줄입니다.”

 참석자들은 순간 충격을 받은 표정이 역력했다. 말이 조직 개편이지 조각이나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일부는 ‘헉’하는 소리가 옆에 들릴 정도로 놀라는 모습이었다. 회의장은 충격의 바다로 변했다.

 당시 회의장 분위기에 대한 황영하 전 총무처 장관의 상황 설명.

 “이날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참석자들은 전혀 내용을 몰랐습니다. 충격이 대단했어요. 당시 조직개편에 따라 장관 2명, 차관급 3명, 차관보급 4명, 국장급 23명개 등이 줄었고 1천여명의 공무원들이 그만 뒀습니다. 사상 최대의 조직개편안이었습니다.”

 K 전 장관의 회고.

 “조직 축소나 확대에 관한 한 부처 간 생존경쟁은 치열할 수 밖에 없어요. 아무리 실세고 유능한 장관도 자기 조직을 보호하지 못하면 그 장관의 리더십은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맙니다. 조직을 못 지키는 장관을 누가 따릅니까. 장관들이야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앞날이 구만리 같은 젊은 공직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개편안 내용은 이 작업을 총괄한 청와대 박관용 비서실장과 관계 수석비서관, 그리고 개편안을 성안한 총무처 황영하 장관 등 극소수만 알고 있었다.

 조직개편안을 성안한 황 전 장관의 계속되는 회고.

 “개편안을 청와대에서 넘겨받아 성안작업을 했는데 당시 총무처 조직국장과 과장, 실무자 등 최소 인력으로 작업팀을 만들었어요. 극비 작업을 했습니다.”

 박관용 실장의 철통 보안 지시에 따라 이 작업에 관여한 실무자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이 개편안에 접근이 불가능했다. 심지어 총무처 차관조차 개편안 발표 전까지 내용을 몰랐다.

 김 대통령은 이에 앞서 11월 17일 세계화 구상을 발표하면서 “창의를 가진 자가 성공하는 사회건설을 위해 정부부터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부터 먼저’라는 대통령의 솔선수범 인식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김 대통령은 기회 있을 적마다 “위로부터의 개혁”을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이제 곧 위로부터의 개혁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었다. 김 대통령이 ‘세계화’와 ‘개혁’을 추진하려면 정부 조직개편은 필수 요소였던 것이다.

 이날 고위당정회의에서는 잠시 서먹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참석자 중 누군가가 “정부조직개편안을 이처럼 극비로 할 필요가 있느냐”며 다소 불만스러운 듯한 태도를 보였다. 김 대통령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분위기가 갑자기 냉각됐다. 박관용 실장이 나서서 ‘비공개로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 분위기를 되돌려 놓았다.

 김 대통령은 고위 당정 회의를 끝내며 거듭 당부했다.

 “공직사회의 동요로 인해 공무 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해 주고 통폐합으로 자리가 없어지는 공무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해 주기 바랍니다. 최대한 빨리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청와대 회의가 끝나자 당정은 바쁘게 움직였다. 일분 일초도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정부와 민자당은 이날 오후 2시 각각 국무회의와 당무회의를 각각 열어 개편안을 확정하기로 결정했다.

 이영덕 국무총리는 총리실로 돌아오자 긴급 국무위원 회의 소집을 지시했다. 비서실은 바쁘게 각 부처 장관실로 전화를 걸었다.

 “2시에 긴급 국무회의가 열립니다.”

 오후 2시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내 국무회의실.

 청와대 고위당정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국무위원들은 갑작스런 회의소집에 하나같이 굳고 긴장한 얼굴로 회의장에 속속 도착했다.

 이 총리는 국무위원들이 정해진 자리에 앉자 회의장을 빙 둘러보며 무거운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오늘 청와대 고위 당정 회의에서 정부 조직을 대폭 개편하기로 하였습니다.”

 순간 장관들의 얼굴이 석고처럼 하얗게 굳었다.

 이 총리의 모두 발언이 끝나자 황영하 총무처 장관이 10여 분간 조직개편의 추진 경위와 내용을 국무위원들에게 설명했다. 황 장관은 참석자들에게 역시 유인물을 나눠 주었다.

 유인물이 모자라 한 부를 가지고 두 사람이 나눠 보는 경우도 있었다. 추가 유인물을 준비하지 못할 정도로 급박하게 움직였던 것이다.

 참석자들의 눈과 귀는 황 장관의 입으로 쏠렸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해 재정경제원을 신설하고 건설부와 교통부를 건설교통부로 통합합니다.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합니다. 중앙행정기관은 39개에서 37개로 줄어 듭니다.”

 청와대에서 밝힌 내용을 다시 설명했다.

 “이렇게 대폭일 수가….”

 정부의 개편안에 부처 장관들의 반응과 표정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통합하는 부처의 경우 망연자실한 표정이 역력했다. 당혹과 허탈, 안도와 기쁨, 그야말로 부처에 따라 희비가 교차하는 분위기였다.

 황 장관의 설명이 끝나자 일부 국무위원은 “이런 엄청난 조직 개편이라면 사전에 귀뜸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항의성 발언도 했다.

 특히 통폐합하는 부처 장관들은 “통합하는 부처 직원들의 신분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공직사회의 동요를 막고 줄어드는 인력에 대한 처리문제가 장관들에게는 발등의 불이었다.

 국무회의 분위기애 대한 황 장관의 기억.

 “개편안의 내용을 모르는 장관들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지요. 조직을 축소하고 인력도 감축해야 했으니까요. 그게 어디 보통일입니까.”

 장관들이 허를 찔린듯 깜짝 놀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정부 조직개편설로 공직 사회가 동요하자 김 대통령은 두 달전 쯤인 10월 6일 경향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정부 조직개편은 부분적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황인성 국무총리도 이를 받아 예산 국회에서 “기구개편은 통폐합이 아니라 기능적 부분적 개편에 한정하겠다”고 답변했다.

 이에 따라 통합설에 신경을 곤두 세우던 경제 부처들은 내심 “이제 조직개편은 물 건너 간 것”이라며 한 숨 돌린 상태였다.

 긴급 국무회의는 30분만에 끝났다. 이 시간에 맞춰 청와대는 기자실에서 정부조직개편안을 공식 발표했다. 주돈식 청와대 대변인은 조직개변의 배경에 대해 “현재의 정부조직은 효율적이지 못해 김대통령이 구상하는 세계회에 맞게 전면 개편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직개편안이 공식 발표되자 각 부처는 벌집을 쑤셔 놓은 듯 발칵 뒤집혔다.

 다만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한 체신부는 예외였다. 오랜 기간 벼르던 숙원이 이루어졌으니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더 컸다.

 그동안 정보통신분야를 놓고 상공부와 과기처, 공보처 등과 서로 다투던 체신부는 “드디어 꿈을 이뤘다”는 환호가 터져 나왔고 직원들은 악수를 나누며 축하했다.

 윤동윤 장관과 경상현 차관, 이계철 기획관리실장, 박성득 정보통신정책 실장 등 정보통신부 발족을 위해 청와대와 국회 등을 뛰어다닌 간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공무원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보통신부 출범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미래를 내다보며 노력한 결과가 문민정부 들어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정부의 조직개편으로 정보통신부는 상공부와 과기처 등에서 정보통신산업 기능을 흡수하고 공보처에서 방송업무를 넘겨 받기로 했다. 조직의 신설과 확대 등으로 부처 위상도 14위에서 9위로 올라갔다.

 정보통신부 출범의 산파역인 윤동윤 전 체신부장관의 회고.

 “당시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바뀐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제시한 공약이 ‘정보통신부 출범’이었습니다. 조직개편안을 만든 행정쇄신위원회나 청와대에서도 정보통신부 출범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어요. 그것은 시대변화의 요구였습니다.”

 체신부로서는 멀고 험한 고달픈 여정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었다. 체신부는 정보통신 강국을 향한 부푼 기대로 온종일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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