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포스코가 2기 프로세스혁신(PI) 프로젝트를 한창 진행할 때였다. 당시 포스코는 PI를 추진하는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벤치마킹 상대였다. 포스코 PI실에는 매달 대여섯 군데의 기업이나 기관이 벤치마킹을 하러 올 정도였다. 놀라운 점은 이런 벤치마킹 요청에 대한 포스코의 자세였다. 탐방객들이 올 때마다 PI실 간부들이 직접 나서서 프레젠테이션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면서 상세하게 PI 경험담을 소개했다.
당시 포스코 최고정보책임자(CIO)였던 김진일 상무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모두 제공하는 데 대한 내부적인 우려나 반발은 없습니까.” 김 상무의 답변은 기자를 부끄럽게 했다. “앞서 고민한 기업들의 경험을 충분히 제공함으로써 다른 기업들이 시행착오를 가능한 한 줄이고,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결국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입니다. 포스코 같은 선도기업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런 배경에는 1기 PI를 진두지휘하며 디지털 포스코의 기반을 다진 유상부 전 회장의 자신감이 큰 힘이 됐다. 한번은 포스코 임원이 비슷한 질문을 유 전 회장에게 한 적이 있는데 답변을 듣고 이 임원도 질문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포스코의 혁신이 여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잖아요. 남들이 우리를 쫓아오면, 우리는 더 앞서 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자신감도 없습니까.”
이런 포스코도 혁신 활동에서 큰 도움을 받은 인물이 있다. 바로 김쌍수 당시 LG전자 사장(현 KEPCO 사장)이다. 김쌍수 사장은 포스코 2기 PI의 핵심 과제였던 6시그마 프로젝트의 정신적 스승 역할을 했다. 포스코와 LG전자는 지난해 말부터 서로 상대방 회사의 혁신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교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두 회사로 인해 ‘혁신 품앗이’라는 새로운 유행어도 생겼다.
이처럼 앞서 가는 곳을 벤치마킹해 혁신에 대한 통찰력을 배우는 방식은 우리 산업계의 혁신 열풍이 긍정적으로 발전하는 데 큰 힘이 됐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1기 혁신 전도사들의 공헌이다. 최근에는 새로운 유형의 혁신 전도사들이 눈에 띈다. 주요 대기업의 혁신 전도사들이 중견 기업의 대표나 고위 임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혁신을 주도하는 사례다. 특히 삼성그룹 출신들이 대거 고위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 식품 업계가 대표적인데, 그중에서도 대상주식회사가 제일 눈에 띈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업계 간 정보 공유라는 측면에서 베일에 쌓였던 곳인데다, 세계 최고 수준의 혁신 활동을 이끌었던 전문가들이 대표이사라는 새로운 위치에서 혁신을 진두지휘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갖게 한다. 이름하여 2기 혁신 전도사들의 등장이다.
박성칠 대상 사장은 삼성전자의 PI와 공급망관리(SCM) 혁신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가 ‘식품업계의 삼성전자’를 목표로 내걸고, 주간 판매생산계획(S&OP)과 3일 확정체제 등 삼성전자에서 경험했던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세스를 정착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박 사장의 이런 경험이 대상뿐만 아니라 대규모 PI나 SCM 혁신을 준비 중인 기업들에도 큰 힘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박 사장을 비롯해 대상 임원들이 곳곳에서 무료 혁신 강의를 하고 있고, 이런 도움에 힘입어 SCM 혁신 활동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얻는 기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한 기업은 박 사장의 무료 강의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대상의 대표 제품 중 하나인 ‘홍초’를 1000만원어치나 구매하기도 했다.
선구자의 노하우를 잘 배울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든 여정이라도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그 노하우를 자신의 것으로 잘 만든다면, 기대 이상의 성과도 얻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지금 2기 혁신 전도사들은 대한민국 경영 혁신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혁신 전도사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기업이 많아진다는 것은 개별 기업의 경쟁력뿐만 아니라 우리 산업의 생태계가 더 튼실해진다는 의미도 있다. 혁신 전도사들이 더 넓게, 더 활발하게 나서도록 힘을 실어줘야 하는 이유다.
박서기 CIOBIZ?편집장 겸 교육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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