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통형 대면적 나노인쇄 기술은 반도체·디스플레이, 태양전지 산업은 물론 전 세계 나노기술 기반 융복합 산업의 미래를 바꿀 것입니다.”
10년 이상이 걸렸다. 보다 빠른 개발과 상용화를 요구하는 시대에 특정기술 개발에 10년 이상을 매달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현석 한국전기연구원 밀양나노센터장(51·박사)는 대면적 나노 인쇄기술에 젊음을 바쳤다. 그리고 끝내 새로운 개념의 ‘원통형 대면적 나노 인쇄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오 센터장이 개발한 원통형 나노 노광기와 식각기는 기존 평판인쇄 방식과 달리 금형 자체를 ‘원통형’으로 설계해 한 번의 회전으로 40인치 이상 ‘대면적’ 나노 미세무늬(나노 패턴)를 ‘연속’으로 새길 수 있는 최첨단 장비다.
그가 이 연구를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 독일에서 마이크로·나노기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LG생산기술원 연구원으로 연구계에 입문했다. 정전기를 이용한 미세이송 기술, 동전크기의 HDD, 슬림슬롯 CD롬 등을 연구·개발하며, 미세 가공기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중장기 프로젝트로 대면적 나노인쇄 연구를 시작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LG전자는 물론 삼성전자 등 디스플레이업계 연구소와 관련 학계는 고가의 수입 ‘고휘도 광학필름’을 대체할 수 있는 대면적 나노패턴 인쇄기술이 화두였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패턴의 불연속, 오차 등 대면적 평판인쇄의 단점은 극복할 수 없었다. 실패는 반복됐고, 롤러 형태의 원통형 인쇄를 연구 키워드로 삼아 연구개발을 거듭한 오 박사 또한 완성된 기술을 내놓지 못했다. 그는 당시 “‘10년내 기술적인 혁명 없이는 대면적 나노 인쇄는 어렵다. 그냥 사다 쓰는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관련 연구부서는 정리됐고, 고민에 빠진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한국전기연구원은 새로운 연구의 시작점이 됐다. 오 박사는 “무엇보다 연구를 끝까지 해내고 싶었고 전기연은 이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전기연이 보유하고 있는 자기부상기술이 이 연구의 난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원통형 인쇄방식에 전기연의 자기부상기술은 궁합이 딱 맞았다. 연구는 이어졌고, 결국 오 박사는 지난해 자기부상방식의 원통형 나노 노광장비에 이어 올초 식각장비까지 대면적 나노인쇄 일괄공정 체제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오 센터장은 “전기연에 와서도 출연연 구조조정이나 중복연구 정리 등의 문제로 거의 1년여를 기획안만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당시 원장님과 현재 원장님은 이 기술에 신뢰를 보였고 적극 지지해줬습니다. 그분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여전히 요원한 기술로 남아 있었을 지 모름니다”고 말했다.
개발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외 산업계와 연구계는 물론 해외에서도 즉각 반응이 일었다. 평판형 전자인쇄 장비분야에서 매출 1조를 올리고 있는 미국 비스텍은 공동회사 설립을 제안했다.
“이제 첫단추를 끼웠습니다. 현재 30∼40㎝ 크기의 원통형 금형까지 만든 단계이고 앞으로 1m 크기까지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때부터는 산업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겁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산업의 미래는 이 원통형 대면적 나노인쇄기술에 달렸습니다.”
경남 밀양=임동식기자 dsl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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