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드 커닝햄이라는 프로그래머가 있었다. 그는 패턴 언어 기반의 프로그래밍과 관련된 정보를 수록하는 회사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있었고, 여기서 프로그래머들이 쉽고 빠르게 서로의 아이디어를 교환할 수 있게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누구나 웹사이트를 쉽게 편집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 자기 회사 웹사이트(a2.com)에 적용하고 일반에 공개했다. 이름은 하와이말로 ‘빨리’라는 단어를 이용한 위키위키웹(WikWikiWeb). 바로 1995년 3월 25일, 최초의 위키 사이트가 등장한 순간이다.
위키의 등장은 ‘권위’와 ‘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위키 이전에 온라인에서의 정보의 통제권력은 이른바 ‘관리자’에게 있었다. 어떤 정보가 웹사이트에 있어야 할지, 어떤 정보를 삭제해야 할 지는 다수건 소수건 항상 관리자가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온라인이 오프라인보다 상대적으로 더 민주적이긴 했지만 최종 결정권한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위키는 여기에 반기를 들고 관리자와 사용자의 구분을 없앴다. 그 근거는 다수 사용자의 행동이 곧 ‘집단지성’으로 발현되어 최선의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 위키의 등장은 사용자 위에 있던 관리자를 끌어내려 모두를 동등하게 만든 ‘혁명’ 그 자체였다.
더 나아가 위키는 ‘가능성’과 ‘상대성’에 대한 믿음을 줌으로써 개방적인 온라인 문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내가 서술한 게 항상 삭제되고 수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사용자는 설사 자신이 어떤 분야의 권위자라 할지라도 자신이 아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내재화하게 된다. 위키는 기존 권위를 항상 새로운 판단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온라인의 개방성은 한층 강화했다.
하지만 ‘집단’에 대한 과도한 믿음은 위키가 가져온 경계해야 할 영향이다. 위키피디아의 대성공이 널리 알려지면서 온라인에서의 집단의 의견을 필요 이상으로 높이 평가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집단지성은 `이것이다, 저것이다`가 아니라 `맞다, 틀리다`의 답이 확실한 문제에만 적용될 수 있거니와 집단을 이루는 개체 간에 다양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어 있어야 발현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모든 웹사이트에 위키가 적용되는 일 따위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위키는 분명 훌륭한 도구지만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건 아니니까. 그러나 미래 인터넷, 온라인과 관련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있다. 그건 바로 위키에서 촉발된 평등과 개방에 대한 믿음이 돌이켜지는 일은 절대 없으리란 것 말이다.
최순욱기자 choisw@etnews.co.kr